한국일보

가족과 관계 이야기-미운 엄마

2005-05-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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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의 최씨는 엄마가 너무나 밉다. 자신이 엄마처럼 사는 것 또한 너무나 싫다. 엄마를 닮은, 아니 닮아 가는 자신의 얼굴 모습도 싫다. 행동거지도 싫다. 평생 힘들게 힘들게만 살아 왔던 엄마처럼 자신의 삶이 한없이 힘든 것 또한 싫다.
엄마는 평생 아들들만을 위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그것도 특히 장남이라는 특권 혹은 명예를 지니고 태어난 듯한 큰아들을 유난히 위하고 편애하며 살아왔다.
그런 장남은 특정한 직업도 없이 70대 노모의 정부보조금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 지난 몇년 동안 장남이 구상해 오고 있는 사업이 언젠가 곧 잘 풀리기만을 노모는 학수고대 하며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최씨는 남편의 빚과 도박문제로 이혼한 뒤 여기저기서 직장을 잡아 보았지만 신통치가 않았다. 결국은 몇달 전에 식당 일을 시작했다. 몸이 썩 건강하지 않기에, 신체노동이 많은 식당 일을 하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많은 저항을 하였었다. 하지만 결국 달리 별다른 수가 없다 생각하여 시작한 일이다.
만성 위궤양, 약한 관절, 그리고 습관성 두통으로 인해 하루하루의 생활이 전쟁터의 삶 같기만 하다. 진통제 없이는 일을 나갈 수가 없다.
의사는 신경성이라고만 한다. 마음과 몸을 평화롭게 하고 가능한 한 많이 쉬라고 한다.
최씨는 자신과 아들 둘의 생존을 위하여 일을 해야만 한다. 어떻게 마음과 몸을 평화롭게 하고 가능한 한 많이 쉴 수 있다는 말인가.
몸이 아프고 생활고에 찌들릴 때마다 자신에게 어떤 재정적인 도움도 정신적인 위로도 주지 않는 엄마와 친정의 형제자매들이 한없이 밉고 원망스럽다. 그러한 가정 출신인 자신이 처량하고 자꾸만 화가 난다.
주위의 친구들처럼 자신도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하루에도 수십번 되뇌곤 한다.
엄마가 재정적인 능력도 없고, 정신적인 여유도 없고, 최씨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때로는 자신과 장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면 또한 가지고 있는 70대의 노모라는 생각이 스칠 때마다 화가 난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에게 향한 자신의 분노와 원망을 해결하고 싶다. 엄마가 떠나기 전에 결점 투성이일 수도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이해하고 싶다. 더 늦기 전에 한없이 미운 엄마를 진정으로 용서하고 싶다.

이 은 희
<결혼가족상담전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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