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터에서-음짜음짜 퍽퍽퍽

2005-05-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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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 서울에 있는 친정 언니와 전화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막내 외숙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울에 살았다면 나도 당연히 장례식에 참석해야 했지만 이곳 미국에 나와서 산다는 이유로 늘 나는 열외처럼 친지들의 부음 소식을 전화로만 듣게 된다. 내 부모님, 고모 두 분, 외삼촌, 외숙모들, 이제 모두 돌아가셔서 부모님대 어른들은 한분도 생존에 계신 분이 없게 된 것이다.
언니가 하는 말이, 이렇게 세월이 가는구나 싶다. 어른들은 이제 안 계시고 사촌들 중에서도 벌써 서넛은 건강 때문에 서둘러 저 세상으로 간 사람도 있고, 이제 우리도 건강 신경 쓰면서 너무 애면글면 살지 말자며 얘기하고 끝을 맺었다. 무심코 그저 하루하루 살다가 이렇게 어른들의 부음 소식을 들을 때면, 아!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이야기 둘- 요사이 남편과 내가 함께 보는 비디오 테입이 생겼다. 좀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며 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한국 비디오 테입을 빌려다 보는 일인데 드라마만 빌려오는 탓에 그동안 비디오 시청은 나 혼자만의 취미(?) 생활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비디오 가게 아가씨가 서비스로 준 프로 중에 ‘낭만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느 한가해진 일요일 저녁 그 프로그램을 혼자서 보고 있는데 왔다갔다하던 남편이 슬며시 앉더니 같이 보게 되었다. 그 후 이제는 그 테입을 일부러 빌려다 놓았다가 시간이 나면 함께 보고는 한다.
아무리 귀를 쫑긋거리며 들어도 요즘 노래들은 가사도 안 들릴뿐더러 더더군다나 그 빠른 랩들은 가수가 다르고, 노래 곡목이 달라도 내게는 모두 그저 똑같이 낯설게 느껴지기만 한다. 음짜음짜 퍽퍽퍽(내게는 이렇게 들린다)하는 리듬에 맞춰 뭐라뭐라 그러는데, 같은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부르는 노래를 못 알아들으니… 암튼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내가 늙다리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고추 잠자리’라는 노래를 부를 때면, 엄마는 지금 저 가수가 뭐라 그러는 거냐고 물었었다. 높은 음을 가성까지 훙내내며 부를 수 있었던 나는 어떻게 엄마는 저 가사가 안 들리나, 도통 이해가 안됐었다. 어디 그뿐인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는 그야말로 랩이 얼마나 많았는가? 나는 지금도 그 랩을 거의 다 욀 수 있는데…이러한 화려한 실력(?)이 있는 내가 비라는 그 유명한 가수가 부르는 노래 한 소절조차도 따라 부르기는커녕 알아들을 수도 없으니, 격세지감이란 표현이 저절로 떠오를 수밖에. 내가 이럴 때, 가요에 문외한인 남편은 상태가 더 심각해 어쩌다 한국 TV에서 해주는 쇼프로그램은 볼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다 <낭만콘서트>를 보게 되었는데, 아! 어찌나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들이 귀에 잘 들리던지, 마치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갑고 또 반가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낭만콘서트’는 우리가 고등학교나 대학 다닐 때 인기 있었던 가수가 나오거나 또 그 노래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암튼 이런 이유들로 우리는 일요일 저녁밥 먹고 한가해진 틈을 타서 차를 마시거나 과일을 먹으면서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생활(?)을 갖게 된 것이다. 처음엔 그냥 보기 시작하다가 차츰 아는 노래가 나오면 저절로 따라 부르고 그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뭔가 서글퍼지는 듯한, 뭔가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웠던 가수들이, 우리랑 세대를 같이했던 그 가수들이 이제는 더이상 젊지도 않을 뿐더러 열창을 할 때마다 흐르는 땀이 안쓰럽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요즘 댄스 가수들이 춤을 추며 노래부를 때 흐르는 땀은 그렇게나 건강하고 힘있게 느껴지더니, 웬 느낌이 이렇게나 다른지… 화려한 복장으로 나오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고, 무난하게 평범한 옷을 입으면 너무 밋밋해 보여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인생이던 화려한 절정이 지나고나면, 한 시대를 풍미하고 나면 반짝 빛나던 부분들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는구나, 아! 나이 든다는 것은 이런 것이로구나…
부모님 세대 어른들이 이제 한분 두분 자취를 감추시고, 형제들이 자식들 결혼 준비로 마음 쓰더니, 어느덧 조카들이 아이들을 낳기 시작했다. 삶의 질로 따진다면 각자의 인생이 다 다르겠지만, 큰 틀로 본다면 결국 인생이란 나고, 자라고, 죽는 똑같은 공식을 갖는 거구나… 그렇다면, 그렇다면 난, 이제부터 억울해하지 말고 살아야지.

이영화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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