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공해 야채가 바로 이 맛이런가…” 조미료 없이 꾸밈없는 맛 “보약같아”

2005-05-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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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금강산 식당 탐방기

금강산 가는 길이 많이 짧아졌다. 유람선을 타고 장전항으로 들어갈 때는 머나먼 외국처럼 느껴지던 것이 육로를 통하니 입출국 검사와 버스 이동시간을 포함해 고작 1시간 이내.
달라진 것은 가는 길만이 아니다. 금강산 관광길에 서있는 북측 안내원들의 표정 역시 많이 부드러워졌다. 남녀 한 조로 짝을 지어 쉴 새 없이 두 눈을 굴리며 감시에 바쁘던 그들이 이제는 현대 측 조장 대신 금강산에 대한 설명을 대신하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조르면 ‘심장에 남는 사람’‘휘파람’ 등 북측 가요를 한 곡조 부르기도 한다.
금강산 입구와 산 중턱 곳곳에는 옹색한 가판대를 마련해 놓고 스낵과 음료를 판매하기도 한다. 김일성 기념비 앞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는 관광객을 적발하는 것보다 특산물을 판매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간파한 결과다.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시라요.” 낭랑한 북측 안내원들이 양 볼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호객 행위를 한다. 막걸리뿐 아니라 북한 측 청량음료와 생수, 과자, 사탕, 그리고 꿀, 도라지, 고사리, 버섯과 같은 특산물까지 판매하는 것이 남측 관광지 모양새를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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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란관 기념품점에서 팔고 있는 술과 식품들.



김치는 젓갈 쓰지 않은 것이 시원하고 개운
온정각의 비빔밥·쌈밥 목란관의 평양냉면

미국 마켓에서 3달러면 충분히 살만한 크기의 잣 봉지 가격을 물어보니 10달러란다. “너무 비싸게 파는 거 아녜요?” 하고 투정을 했더니 안내원 아가씨 말이 “관광지인데 이 정도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닙네까?” 하고 따지듯 묻는다. “이 가격에 사 먹는 인민들 있습니까?” 하고 되물으니 “저희 인민들 가는 상점이야 싸지요.” 하고 털어놓는다. 대부분 상품의 가격은 어이가 없을 만큼 비싸다.
이전에는 아침과 저녁 식사는 유람선 안에서, 점심 식사 한 끼만 현대 아산에서 지은 온정각에서 했다. 하지만 이제는 금강산 호텔, 해금강 호텔에 묵고 삼시 세끼를 북녘 땅에서 먹으며 훨씬 다양한 북측의 음식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됐다.
금강산도 식후경. 금강산 호텔 2층에 있는 호텔 식당에서는 두 번의 아침과 한 번의 저녁을 먹었다. 부페 스타일로 마련되는 호텔 식사에는 밥, 국, 김치, 나박김치에 반찬이 10여 가지 나온다. 취나물, 고사리나물, 두릅나물, 파나물, 무채, 콩자반, 두부 부침, 수수전, 야채 튀김, 잡채, 오징어 젓 등의 반찬이 나왔고 땅콩죽, 팥죽, 소라죽 등 죽도 끼니마다 빠지지 않고 있었다. 후식으로는 속을 팥으로 채운 쫄깃쫄깃한 앙꼬 빵이 아주 맛있었다.
밥은 흰밥도 있었지만 수수와 팥 등 잡곡을 넣은 밥이 더 고소하다. 김치는 젓갈을 쓰지 않은 것이 정말 시원하고 개운하다. 김치 냉장고도 따로 없을 텐데 어쩜 이렇게 알맞은 상태로 숙성시켰을까.
청정 무공해 환경에서 자라난 야채는 쌉싸름하면서도 독특한 풀의 향이 어찌나 향기롭던지. 양념의 사용을 절제해서 야채 특유의 풍미를 고스란히 즐기다 보면 먹는 것이 보약이란 표현이 하나도 틀린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화학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깨끗하고 꾸밈없는 맛은 혀뿐 아니라 몸이 좋아한다. 물이 좋아서일까. 밥도, 국도, 나물도 정말 담백하며 맛있다.
우리말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북측에서는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을 웨이트리스가 아닌 접대원이라 부른다. ‘아가씨’ 또는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다. ‘접대원 선생님’ 정도면 정중한 표현이다. 저녁 식사 후 한 잔 하러 스카이라운지에 올랐더니 맥주, 와인, 스카치 등 각종 주류를 갖추고 있고 사과, 수박을 깎아 차린 과일 안주도 비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중앙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바로 전까지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술과 안주를 가져다주던 북측 접대원들이 마이크를 부여잡고 ‘휘파람’ 등 북한 인기가요를 불러준다.
금강산 산행 이후 점심은 온정각에서 비빔밥 부페로 했다. 1관과 2관으로 나뉜 온정각은 모두 54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음식점.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야채는 금강산 현지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것으로 아주 신선하다.
온정각 식 비빔밥은 독자 여러분들도 한 번쯤 만들어 드시라고 권하고 싶다. 만드는 법도 별다른 조리법이 따로 필요치 않다. 준비물은 밥, 쌈 용 다시마 채친 것, 무순, 알팔파 등 각종 야채의 어린 싹, 구운 김 채친 것, 고추장, 참기름이 다다. 아참 한 가지 더. 도토리묵에 부추와 양파, 당근을 넣고 무친 것도 준비한다. 이 재료를 모두 넣고 마지막으로 김을 얹어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비면 되는데 ‘전주비빔밥’이 울고 갈 만큼 기막힌 맛이다. 이 외에도 온정각에는 쌈장과 각종 야채가 마련돼 있어 쌈밥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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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각의 새싹 비빔밥 재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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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녹말 면발이 쫄깃한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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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나물,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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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호텔 부속 건물 금강원 식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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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찬을 세팅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테이블.



금강원의 죽, 흑돼지 바비큐 들쭉술과 일미
단풍관의 계절 요리·고성항 횟집 해산물등

둘째 날 저녁은 금강산 호텔 부속건물인 금강원에서 북측 요리사가 직접 준비한 만찬을 시도했다. 온정각이 현대에서 운영하는 것과는 달리 금강원은 순수 북측 음식점. 제법 커다란 단독 건물에 들어선 금강원은 각 모임의 오붓한 만찬을 위해 8-30명 정도가 개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 4-5개로 나뉘어져 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향긋하고 담백한 계절나물과 김치, 한 가지씩 접대원이 서브하는 코스음식 모두가 맛깔스럽다. 가격은 한 끼에 25달러.
첫 번째 코스는 생선 튀김. 너무 질기고 맛도 그다지 기억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코스는 꿩 만두. 4쪽이 나왔는데 “두 손님 앞에 한 접시입네다”라는 말을 듣고 세 번째 것에 젓가락을 데려다 떼었다. 꿩고기와 김치를 듬뿍 넣은 만두는 담백하고 간장을 따로 찍어먹지 않아도 입에 착착 붙는다.
세 번째 코스는 테이블 위에 미리 준비해 놓았던 흑돼지 바비큐. 말을 안 했더라면 돼지고기인 줄 몰랐을 정도로 기름기가 적고 육질이 쫄깃하다. 알콜 도수 40도가 넘는 독주 들쭉술 한 잔을 들이키니 목젖이 짜르르 타오르며 “캬” 소리가 절로 나온다. 들쭉술 이외에도 금강원에서는 평양소주, 인삼주, 캔 맥주 등의 주류를 취급하고 있다.
이어서 홍합죽(섭죽)과 냉면이 제공되는데 역시 냉면은 이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시원한 육수가 일품이며 감자녹말 면발도 쫄깃하다. “접대원 선생님, 가위 있습니까?” 너무 질겨 면 끊기가 어려웠는지 일행 중 한 분이 물었다. “저흰 그런 것 없습네다. 그냥 이빨로 끊어 드시라요.” 혁명군처럼 거친 표현에 질문한 사람은 그저 뻘쭘한 표정을 지을 뿐.
구룡폭포에 올랐다 하산하고 나면 360도로 둘러싸인 창을 통해 밖의 풍경을 즐기며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는 목란관이 눈에 들어온다. 목란관에서는 비빔밥과 평양냉면, 추어탕을 선택할 수 있고 부식으로는 녹두전, 산채, 고기튀김, 만두, 김치가 나오는데 음식 맛이 일품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기념품점에서는 미인도와 손수건 등 기념품 외에 북한의 술과 말린 버섯, 고사리 등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름다운 삼일포를 배경으로 한 단풍관은 단풍이 붉게 타는 계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 여사가 다녀갔던 것을 기념해 세워진 하얀 석조 건물의 식당. 북측사람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간단한 계절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찹쌀과 옥수수, 과일을 넣어 만든 막걸리는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하마터면 대낮에 주량을 넘을 뻔 했다. 단풍관 밖에서 구워 판매하는 홍합과 조개 구이를 안주로 먹었는데 크기도 남한의 배는 넘고 맛 또한 기막히다. 단풍관에서는 고사리, 송화 가루 등의 특산품과 술잔, 달력, 손수건 등의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고성항 횟집은 청정해역 북측 동해안에서 갓 잡아 올린 자연산 활어와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곳. 총 240석의 좌석을 확보하고 있고, 개별실도 있어 단체손님이나 가족단위로 식사하기 좋다. 남측에서 인기 있는 회는 물론이고 10년산 돌망챙이 등 남측에서 흔하지 않은 음식도 맛볼 수 있다고 하는데 가격이 60달러가 넘어 포기했다.
금강 펜션타운은 관광객에게 푸짐하고 정갈한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근처 숙소에서 매운탕과 각종 주류, 음료를 주문하면 숙소로 배달하거나 출국할 때 가져갈 수 있도록 포장 배달도 해준다고 한다.
밥을 먹고 나와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은데 남쪽서는 눈에 치는 자동판매기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여긴 자동판매기 없습니까?” 하는 질문에 “1층 로비서 판매하고 있습네다”라 답해 온다. 300원이면 사먹던 커피가 졸지에 1달러가 되어 있다.
북측의 모든 식사비는 달러로 계산한다. 온정각의 점심과 저녁, 금강산 호텔의 점심과 저녁은 모두 10달러, 금강원의 북한 정식은 25달러. 우리야 편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온 손님들은 왜 달러만 받느냐 볼멘소리다. “우리 한 민족이 두 가지 다른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네까? 통일이 된 그날에는 북조선 화폐도 남조선 화폐도 모두 없어지고 새로운 화폐가 되겠지요. 그 날이 올 때까지만 한 가지 화폐를 사용하자는 것입네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지금 온정각 바로 옆에는 고래 등 같은 기와가 드리워진 대형 건물이 한창 공사 중이다. 냉면 등 북한 특식을 제공하게 될 대형 식당 모란각 건물이다. 7월께 금강산을 방문하면 새로 지은 모란각 건물에서 시원한 냉면을 즐길 수 있게 될 것 같다.
세상 어느 곳을 여행하던 그 곳의 향토음식을 맛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물다. 그동안 꽉 닫혀 있던 금단의 땅에서 소박하고 꾸밈없는 북한 음식을 먹는 기쁨은 상팔담 정상에 선 것보다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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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에서 재배된 청정 무공해 쌈밥용 야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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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돼지 구이 양념 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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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죽. 죽이 자주 식탁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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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튀김. 발라내니 먹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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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고기로 속을 채운 만두.


<글·사진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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