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보 석

2005-05-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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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모금 행사에 이 보석을 내놓겠어요. 얼마에 팔릴까요? 내가 우리 학교를 위해서 얼마를 도네이션 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실을 말하자니 아이를 실망시킬 것이 안쓰러웠고…


결혼할 때 아내와 나는 서로 시계 하나씩만을 주고받았다. 하루 종일 새 환자가 올 때마다 수술 장갑을 끼었다 벗었다 하는 나는, 반지를 끼는 게 불편해서 제발 보석 같은 것을 사지 말라고 부탁했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다이아몬드가 그저 돌멩이의 한 종류라는 걸 과학시간에 배운 뒤로는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부모님께 받은 예물 비용을 슬쩍 돌려서 초호화판 신혼 여행비로 탕진했는데 그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례 목사님이 결혼식장에서 예물교환 순서에 사용할 반지를 가져오라고 해서 우리는 가느다란 금반지 두 개를 샀는데 아깝게도 지금은 집안 어느 서랍에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식장에서 쓰고 난 금반지 두 개를 들고 내가 “히야, 이거 누구 골드 크라운 해줄까?” 하고 말했을 때 옆에서 말리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좋은 용도로 사용되어 누군가의 입안에서 열심히 제 소임을 할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무심한 부모와는 달리 아홉 살 난 아들아이가 애지중지 아끼는 보석 한 점이 우리 집에 있다. 어른 엄지손가락만큼 커다란 연두빛의 보석 주변에 1캐럿 사이즈의 다이아몬드가 무수히 박혀 있는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사실은 한때 자기 누나의 머리 묶는 고무줄에 매달려 있던 것인데 하도 낡아서 고무줄이 떨어져 나가고 보석 파트만 남아있게 된 것을 아이가 진짜 보석인 줄 알고 주워둔 것이다.
아이는 이 보석을 자기 옷장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가끔씩 꺼내보며 호호 입김을 불어 닦아준다.
또 가끔은 햇빛에 비추어가며 다양한 색채로 찬란하게 빛나는 광채에 감탄한 뒤에 다시 소중히 싸서 감추어두곤 한다. ‘타이태닉’ 영화를 보고 난 뒤, 아이는 이 보석이 그때 바다에 빠졌다가 다시 건져진 진품 보물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
아이의 착각을 굳이 밝혀 알려줄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럭저럭 잊고 지냈었는데 얼마 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기금 모금 경매행사가 열리면서 우리 부부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아이가 한동안 고심을 하더니 마침내 결단을 내린 듯 우리에게 말했다.
“기금모금 행사에 이 보석을 내놓겠어요. 얼마에 팔릴까요? 내가 우리 학교를 위해서 얼마를 도네이션 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실을 말하자니 아이를 실망시킬 것이 안쓰러웠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고 있을 때 같은 학부형인 미국인 친구가 도움천사로 나타났다.
그는 아이의 이름 앞으로 물품을 잘 받았다는 확인 증명서를 정식으로 만들어 보내주었다. 그 안에는 ‘이 학교가 너처럼 훌륭한 아이들에게 더 멋진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도네이션을 해주어 무척 감사하다’ 는 내용의 편지가 첨부되어 있었고 성금 액수를 쓰는 칸에는 영어로 PRICELESS (가격을 잴 수 없으리만치 귀중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구두쇠 부자가 보석 담긴 항아리를 땅에 묻어두고는 날마다 한번씩 들여다보며 좋아했다. 어느 날 도둑이 보석을 몽땅 훔쳐가자 부자가 땅을 치며 원통해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조롱한다.
“이봐요, 앞으론 그 안에 돌멩이를 담아놓고 보석이거니 하며 좋아하면 되지 않겠소? 어차피 쓰지도 않을건데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항아리 안에 감춰둔 부자들의 보석이 세상에 나와 좋은 일에 쓰일 날이 온다면… 참 기쁘겠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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