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완견 6마리 키우는 ‘애견 대모’ 전유숙씨 가정

2005-05-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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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가장 많이 기르는 애완동물은 무엇일까? 강아지, 혹은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정답은 ‘민물고기’(freshwater fish)다. 미애완동물용품제조업체의 조사에 의하면 18,500만 마리의 민물고기가 미국 가정에서 살고 있고, 고양이는 7,770만 마리, 개 6,500만 마리, 새 1,730만 마리, 그리고 햄스터, 기니피그(일명 모르모트로 다리가 짧고 머리가 크다), 친칠라(다람쥐처럼 생긴 털실쥐) 등 미니동물 1,680만 마리가 미국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애완동물 숫자만 따져도 미국인구를 초월하지만, 그들의 생활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인과 함께 비행기 여행을 하는 애완동물을 위해 마일리지 적립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항공사가 있고, 애완동물에게 침대와 음식, 운동 서비스 등의 특사 대접을 하는 호텔도 있다. 애완 동물을 키우는 사람 중 80%이상이 스스로를 동물의 ‘엄마’ ‘아빠’라고 칭한다니, 이젠 사람보다 애완동물이 사랑 받는 세상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한인 가정들도 예외는 아니다. 강아지나 고양이 한마리 키우는 가정은 아주 평범한 편. 키우다보면 ‘심심할까봐’ 친구 만들어주면서 두세마리 금방 되고, 그중 새끼라도 낳게 되면 애완동물 숫자가 식구수를 훨씬 뛰어넘기도 한다. 올망졸망한 개 6마리를 집안에서 금지옥엽 키우는 전유숙씨 가정의 개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코코 새끼 낳을땐
이층 손님방을 통째로 고쳐
산후조리실 마련”

“우리 코코는 보스 기질이 강해요”
“친구가 집에 놀러오면 일단 왕따를 시켜 군기를 확실하게 잡은 다음 같이 놀아주죠”
“발톱을 깎아줄 때 너무 짧게 잘라주면 안돼...”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자녀 이야기를 나누나 보다고 착각할 듯하다. 그러나 실은 ‘엄지’라는 이름을 가진 몰티즈 1마리, ‘코코’ ‘팅커벨’ ‘요시’ ‘새미’라고 불리는 요크셔 테리어(애칭 요키) 4마리, 그리고 시추 1마리를 키우고 있는 전유숙(46)씨의 라팔마 주택 거실에서 들리는 대화다.
개 모임 친구들 사이에서 ‘애견 대모’로 통하는 전씨는 애완견 미용(grooming)은 물론 웬만한 질병치료나 백신주사쯤은 손수 놓는 애완견 박사다. 냉장고 문 앞에 붙어있는 사진들도 딸과 남편 사진보다 개 사진이 더 많고 딸 애슐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애완견 앨범코너가 별도로 마련돼 있을 정도니 두말해서 뭣하랴.
법적으로 허용된 실내 애완견의 숫자는 3마리지만, 2년생인 요크셔 테리어 코코가 석 달 전 새끼를 낳는 바람에 가족 수보다 애완견 수가 많아졌다.
그야말로 온 집안이 ‘개판’이지만, 남편과 틴에이저 딸도 개를 끔찍이도 사랑하기에 6마리 모두를 끌어안고 살고 있다.
“얼마 전 가족회의에서 눈물을 머금고 3마리를 분양하기로 결정했다”는 전씨는 “지금까지 키운 개와 우리 집에 뿌리(?)를 둔 개를 모두 집합시키면 소대병력을 너끈히 될 것”이라며 웃는다.
애완견 등록비(불임수술을 시키지 않은 개는 연등록비가 70달러)로 엄청난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왕언니’ 코코의 새끼를 직접 받아보고 싶어서, 코코가 두살이 될 무렵 동네에서 가장 잘생기고 평판이 좋은 수컷을 찾아 거금을 주고 교미를 시켰다.
두세 달은 코코 산간 하느라 꼬박 집에 붙어 있었다는 전씨는 개는 사람이 아니기에 개답게 길러야 한다는 철칙을 생전 처음 어겼다. 코코가 새끼를 낳자 2층에 있는 손님방을 아예 코코 산후조리실로 개조한 것.

“새끼를 낳을 때 코코도 저도 고생 많았어요. 오후 늦게 진통이 시작돼 저녁 7시부터 자연분만을 시작했는데 3마리를 낳자 코코가 기운이 딸리는지 나머지 1마리를 낳지 못하는 거예요.



새벽5시에 수소문을 해서 샌버나디노 동물병원 응급실까지 부랴부랴 달려갔죠. 겨우 수술을 하긴 했는데 이미 새끼는 죽은 상태였어요”
가족 여행을 가도 코코, 팅커벨, 엄지를 모두 데려가려면 캠핑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전씨는 “한 마리 당 캠핑비 5달러를 추가 지불해야 하지만, 남한테 개를 맡기고 여행을 가는 건 왠지 신경이 쓰여서 싫다”고 이유를 댄다. 한두 마리를 길렀을 때는 이곳저곳 문의를 해서 애완견 숙박을 허락하는 호텔을 찾아다녔지만,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자연 여행도 뜸해졌다.
“몰티즈와 요크셔 테리어가 집안에서 기르긴 가장 무난한 종류예요. 둘 다 현명하면서 성격이 비교적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라요. 한가지, 요키는 질투심이 강한 편인 것 같아요. 털 색깔이 달라서 그런지 엄지(몰티즈)만 보면 코코(요키 대장)가 못살게 굴거든요”
털이 짧은 치와와를 기르면 털이 덜 빠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털갈이가 더 심하다는 전씨. 푸들은 똑똑하지만 예민한 면이 있고, 치와와는 다소 신경질적이며, 코카스파니엘은 인기는 좋지만, 너무 방정맞아 제어가 힘들고, 시추도 성격은 좋은 편이지만 손이 많이 간다고.
집안에서 기르는 개들지만 운동을 충분히 시키기 위해 동네 개 공원(dog park)에 자주 데려간다. 개 공원에 갖다오면 그날은 차고에서 잠자는 날이다. 다음날 아침 한번 더 공원에 나가 실컷 뛰어 놀 수 있다는 기대감에선지 군소리 없이 잠을 잔다. 이틀을 공원에서 놀고 나면 다음은 줄서서 목욕하는 시간. 세탁실 싱크대가 개들의 목욕탕인데 캐비넷을 여니, 겹겹이 쌓여있는 애완견 목욕타월과 함께 애완견 샴푸 종류가 10가지도 넘는다. 털을 하얗게 해준다는 화이트닝 샴푸, 가려움증과 각질을 제거해주는 샴푸, 피부를 부드럽게 해주는 로션, 귀를 깨끗이 닦아주는 이어 클리너와 파우더 등등.
“애완견에게 가장 흔한 질병이 중이염이에요. 산책을 갔다가 벼룩(flea)이나 진드기(tick)를 옮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목욕만 자주 시키면 심해지진 않죠. 하지만 귀는 깨끗이 씻어 말려주지 않으면 귀 진드기(ear mite)가 생겨서 병원신세를 지는 개들이 많아요”
아는 사람들은 애완견에게 질병이 생기면 전씨에게 가장 먼저 달려온다. 수의사를 찾아가 괜히 비싼 병원비를 지불하기보다는 질병 치료는 물론 예방법까지 상세히 알려주는 전씨의 조언이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친구는 끼리끼리 모인다고 제 주변에는 애완견을 기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심지어 어떤 분은 개한테 들어가는 돈이 제일 아깝지 않다고 하죠. 대학생, 고등학생 자녀도 있지만 하루종일 붙어 다니는 애완견이 가장 사랑스럽다나요. 개를 길러본 사람들은 동감하는 이야기일 거예요”

◇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별난 사랑
주변을 둘러보면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 사람들이 많다. 애완동물을 끔찍이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애완동물을 위해서라면 거금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황제처럼 애완동물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별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공통점으로, 오히려 이 같은 별난 사랑이 일종의 사회적 추세라고 표현한다.
사람이 먹는 음식에는 조미료가 많이 들어있어 우리 아기(?) 건강에 나쁘다고, 갈비나 불고기를 먹일 때는 물에 깨끗이 씻거나 입에 넣고 꼭꼭 씹어서 조미료 성분이 빠져나간 고기 조각을 먹이는 주인도 있고, 개와 고양이를 위해 비스켓이나 트릿을 즉석에서 구워 판매하는 베이커리에서 사다 먹이는 것은 물론 집에서 직접 비스켓을 만들어 먹이는 사람도 있다.
여행할 때 꼭 데리고 다닌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항공사 규정상 개, 고양이, 조류 중 일부만이 비행을 함께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며, 토끼나 햄스터, 기니피그 등은 주인이 아무리 ‘가족’이라고 주장해도 기내 탑승이 불가능하다. 물론 별도 탑승료는 당연히 부과된다.
이처럼 여행 혹은 외출시 반드시 애완동물을 동반하다보니, 루이 뷔통(Louis Vuitton), 버버리(Burberry) 등 명품 브랜드들은 머리만 밖으로 나오도록 디자인된 실크스크린 애견운반가방(pet carrier, 600∼800달러선)과 개줄 목걸이(collar, 80∼100달러선)도 판매한다. 뿐만 아니라 버버리 체크 무늬 옷 등으로 온몸을 감싼 ‘명품 동물족’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집안에서도 구찌(Gucci)의 강아지 매트리스(dog mattress, 405달러)에서 잠을 자고 구찌 먹이통(large dog bowl, 135달러)에 밥을 담아 먹으며, 지미 추(Jimmy Choo) 장난감을 갖고 논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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