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목회의 코드

2005-05-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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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맥스 루카도(Max Lucado)가 쓴 글을 읽고 깊이 생각에 잠겼던 적이 있다.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어느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첫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른 시각 교회로 갔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아니한 교회당은 깊은 고요와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차 안에서 잠시 그날의 설교를 묵상하던 목사님이 조용한 걸음으로 교회 정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키를 따고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알람 장치가 된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 고요하던 교회당이 순식간에 요란한 소리와 혼돈 속에 휩싸이게 되자, 당황한 목사님이 알람 장치판을 열고 나름대로 열심히 오프셋(off-set) 코드를 눌러 보았다. 그러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한참 뒤에 경찰이 달려 왔고 경찰의 조치로 알람은 꺼졌지만, 경찰의 핀잔을 피할 길이 없었다.
경찰이 물었다. “당신이 누구요?” “저는 이 교회 목사입니다.” “아니, 목사라는 양반이 어떻게 교회의 경보기 하나 끄지 못한다는 말이요?” 엉겁결에 목사님은 대답했다. “신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심각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충고해 주었다고 한다. “당신이 앞으로 이 교회에서 계속 사역하고 싶으면, 교회가 요란하고 혼돈스러울 때 그것을 끌 수 있는 코드(code)를 배워 두어야 합니다.”
목회 현장이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는 곳이다. 고요하던 교회가 어느 날 갑자기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소란해지기도 하고, 천사 같던 사람들이 갑자기 원수가 되어 노도같이 덤벼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소요들을 잠잠케 할 수 있는 코드는 무엇일까?
물론 준비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소요가 일어나는 상황과 케이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논리적 정당성’만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면 정당하지 않은 쪽이 없다. 나름대로는 다 이유가 있고 명분이 있다. 더구나 미묘한 인간관계와 복잡한 정서가 얽혀있어서, 실타래 풀어내듯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예가 많다.
그러므로, 인간적 시도로 상황을 장악하려 하기 보다 영적 순리를 따르는 지혜가 필요하다. 영적 순리란 하나님의 흐름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마치 강물이 흐르는 방향이 있듯이 영적 물결도 방향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낮은 곳이며, 자신을 비워낸 빈 공간이다. 거기에는 역설적 진리가 존재한다.
스스로 패배자 되어 물러설 때 하나님이 안겨 주시는 승리가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빈 공간 속에 더 위대한 꿈을 향한 생명이 싹튼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가르쳐 주신 진정한 목회의 코드가 아닐까?

박 성 근 목사
(로스앤젤스 한인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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