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입맛 없다구요 월남 비빔국수 어때요?”

2005-05-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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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파리에 갔을 때는 동생 시고모 댁에 묶으며 색다른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올해 예순이 넘은 오딜(Odile) 고모는 약 40년 전 베트남 2세인 남편 앙드레와 결혼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아내가 남편의 식성을 따라야 하는 것은 공통된 미덕인 걸까. 그녀는 토끼와 거위 요리, 샐러드 등 전통 프랑스 요리 외에도 가끔씩 듣도 보도 못한 베트남 요리들을 선보여 우리 가족들을 즐겁게 했다.
그 가운데 준비과정이 간단하면서도 허브 향 가득하고 상차림이 푸짐하고도 예뻐서 모두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던 요리는 베트남 스타일의 비빔국수.
아마도 독자들은 베트남 식 국수 하면 자동적으로 포를 연상할 터이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도 포 외길 인생이 아닌 다음에야 같은 국수와 재료를 가지고 왜 쇠고기 국물에 말아먹기만 했겠는가.
최근 한인타운 내 24시간 영업을 하는 월남 국수집에서도 ‘특미 월남식 비빔국수’를 만날 수 있었다. 맛도 오딜이 만들어주었던 것 못지 않았다. 많지는 않지만 LA 곳곳에 있는 베트남 식당에서 역시 베트남 스타일의 비빔국수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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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퓨전 레스토랑 미켈리아의 셰프, 키미 탱(오른쪽).


퓨전 식당 미켈리아의 셰프 키미의 조리법


쇠고기, 양파 넣고 볶고
닭고기등은 양념 미리
무·당근 채 썰어 초절임
양배추·오이·양상추·깻잎
깨끗이 씻어 가늘게 채 쳐
민트·베이즐·파등 다져 넣고
피시소스는 설탕·식초를
국수 삶아 모든 재료 얹고
튀긴 에그롤 위 땅콩가루를

파리를 떠나기 전 오딜에게 월남식 비빔국수 만드는 법을 물었지만 어눌한 프랑스어와 어눌한 영어가 만나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라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 별 수확이 없었다.
순간 LA에서 몇 손가락 내에 꼽을 정도로 음식 맛이 좋은 베트남 스타일의 퓨전 레스토랑 미켈리아(Michelia)의 셰프 키미(Kimmy)가 떠올랐다.
맛의 달인인 그녀라면 베트남 식 비빔국수 만드는 법 정도는 알려줄 수 있으리라는 예상은 결코 빗나가지 않았다. 베트남 식 비빔국수는 쫄깃한 쌀국수가 주재료인 탄수화물 급원이라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쌀국수는 중국, 타이, 월남 마켓에 가면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그 외에 각종 고기와 야채가 부재료로 쓰인다.
쇠고기의 경우는 양파를 함께 넣고 볶고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양념을 넣고 미리 볶아둔다. 에그롤 튀긴 것을 잘라서 웃기로 쓰는데 에그롤을 처음부터 만들면 가장 좋겠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마켓에서 사다 써도 무방하다.
무와 당근을 채 썰어 식초와 설탕을 넣고 우리식 무채 초절임을 만들어두면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다음은 야채 준비. 그때그때 마켓에 가서 그 계절에 가장 신선한 야채를 이용하면 되는데 양배추, 보라색 양배추, 당근, 오이, 양상추 등은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아이템들이다. 여러 차례 먹어보며 이런 야채를 첨가하면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짐작에 시도해봤더니 역시 괜찮았던 야채는 깻잎, 쑥갓, 미나리 등 향기가 강한 것들. 모두 깨끗이 씻어 가늘게 채를 쳐 준비한다.
이 외에 민트와 베이즐, 실란트로, 파, 할라피뇨 등 허브를 다져 놓는다.
월남 식 비빔국수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피시소스다. 판매하고 있는 피시소스는 우리들이 김치 담글 때 젓갈을 대신할 만큼 짜서 그냥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새콤달콤한 맛을 내기 위해 피시소스에 설탕, 식초 또는 라임, 여기에 약간의 핫 소스를 넣는다. 이때 무채 초절임의 국물을 넣어도 좋다. 자 이제 기본적인 준비가 다 끝났으니 쌀국수를 삶아보자. 끓는 물에 쫄깃쫄깃하게 데쳐내 얼음물에 헹군 뒤 물기를 꼭 짜 속이 움푹한 그릇에 담는다.
위에 고기 볶은 것과 야채 채 썬 것, 그리고 허브 다진 것을 소담스럽게 담은 뒤 에그롤 튀긴 것을 작게 가위로 잘라 얹고 땅콩가루를 뿌린다. 피시소스를 작은 종지에 넣어 옆에 곁들이면 상차림 끝. 지역에 따라 피시소스를 아예 처음부터 국수에 부어 서브하는 곳도 있다.
국수를 담는 그릇은 생야채가 많으니 양푼이라 할만큼 커다란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쫄깃한 면발에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의 피시소스와 향기 가득한 생야채의 아삭거림, 그리고 양념이 충분히 밴 따뜻한 고기의 어우러짐은 그 조화를 비교할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
항상 생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만 안고 살았지 실제는 입에 쓴 한약이라도 먹는 듯한 의무감에 가득했던 우리들. 월남 식 비빔국수는 향기로운 생야채를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이기도 하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줄 만큼 입맛 돋우는 월남 식 비빔국수로 저녁 식탁을 꾸며보자.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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