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터에서

2005-05-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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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조심

매일매일을 살아가면서 기분 좋은 말, 듣기 좋은 말 한마디가 그날의 기분을 얼마나 좌우하는지는 우리 모두가 느끼며 살아들 갈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모나고 모진 구석이 없는 한, 다른 사람에게 기분 나쁘고 상처가 되는 말들은 피하고 또 가급적이면 안 하려고들 하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이 마음먹는 일일 것이다.
주먹으로 때리는 것만이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말로도 얼마든지 사람을 죽이게도 살리게도 하는, 그야말로 세치 혀의 힘은 어쩌면 주먹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직 철이 없었을 때, 형제들과 다투거나 친구들과 토닥거릴 때, 서로의 마음이 상해 그만 상처되는 몇마디의 말들을 던져가며 싸웠던 기억 외에는 어른이 돼서는 특별히 남에게 의식적으로 모진 칼날이 되는 말을 했던 기억이 없다. 여기서 의식적으로라는 말은 일부러, 어떤 뜻을 가지고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니 어떤 사람을 속상하게 할 요량으로 나쁜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의미겠다. 암튼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주의도 해가며 말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생각지도 않게 가끔 실수를 하곤 한다.
몇달 전, 우리 가게에 단골로 오는 손님(벌써 4년 넘게 만났다)이 지나가는 말로 “나, 사실은 자기 땜에 참 속상했었어” 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니, 도대체 내가 무슨 실수를? 그것도 가게 물건을 팔아주는 고마운 분한테 내가 어떻게? “저 때문에요, 왜요?” “내가 없이 사는 건 맞는데,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심했어. 며칠동안 얼마나 속상하던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 아주머니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도통 생각은 안나고 나 때문에 며칠이나 힘드셨다니 이 일이 도대체 뭔 일일까. 이제는 괜찮다고 하는 아주머니를 졸라 얘기를 들어보니 그제야 생각이 났다. 그리고 아~! 그렇게 오해하셔셔 속상하실 수도 있겠구나… 아주머니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아주머니: 난 없게 살아도 누굴 자꾸 사주고 싶어.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한테는 자꾸 주고 싶고.
나: 원래 없는 사람들이 누구한테 잘 줘요.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부족한게 없어서인지 나누지를 않더라구요…
나는 아주머니가 정말 형편이 어려운지 어떤지도 잘 몰랐고 그냥 보편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를 한 것이었고, 나도 그 없는 사람에 속하니까 아무 생각없이, 정말이지 맺힌 맘 없이 말을 했는데, 아주머니는 당신을 없는 사람 취급한 것이 못내 마음이 불편하셨던 거다. 미안하다고 사과드렸다. 내가 정말 실수한 것이었으니까.
내친 김에 생각나는 또 하나의 실수를 밝혀보겠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직장에 다닐 때의 일인데, 직원이 많았었다. 서로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그저 어느 부서에서 일하시는 분이겠구나, 어림짐작으로 생각하고 그저 목 인사만 나누기만 하던 분이었다. 복사를 하려고 그 분이 서 계셨는데 마침 내가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아저씨: 복사가 잘 안돼서 그러는데…(복사기계가 가끔씩 말썽을 부렸었다)
나: (기계 옆구리를 주먹으로 탕탕 치며, 그렇게 하면 기계가 작동을 하기도 했으니까) 몇장 해드릴까요? 기계가 사람을 알아보거든요(난 순전히 농담이었었다).
며칠 뒤,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분이 내 쪽으로 걸어오셨다.
아저씨: 내가 임시직이란 걸 복사기계도 안단 말이요?
나: 네?
아저씨: 내가 배달하는 사람이라 기계마저도 사람 차별을 하느냐구요?
나: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며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저, 저는…
뭐라구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죄송하다고 그런 뜻이 아니었노라구, 정말 아무 뜻 없이 한 말이었다고 백배사죄했었다.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이기도 했다. 내 쪽에서 악의를 가지고 한 말도 아니고 그냥 무심코 한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두 분이 좀 예민한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아무 뜻도 없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한 내 말의 가시에 찔려 며칠씩이나 마음 상해하셨을 그 두 분… 알게 모르게 또 내 말의 가시에 찔린 다른 사람은 또 없었겠는가. 입을 꿰매고 살 수도 없는 일이고, 암튼 말은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이영화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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