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04-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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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장한나

나는 별다른 취미나 특기가 없지만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두가지 있었다. 하나는 첼로요, 또 하나는 재즈 댄스인데, 둘다 마음만 그렇다는 것이지 과연 내 생전에 언제 시도해볼 수 있을지,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그 둘 중에서 첼로는 그 아름다운 소리와 내 몸집에 비해 다소 거대한 악기의 사이즈가 나를 유혹했다. 첼로는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한 소리를 내는 악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 첼로의 소리를 들으면 귀로 듣는 것 같지 않고 내 가슴으로 직접 울려 전해오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악기의 크기에 대해서는 두 팔과 몸으로 껴안고 연주하는 악기라는 점이 나를 몹시 끌어당겼다. 내 몸 만한 나무통을 그렇게 부여안고 연주하면 마치 내 맘대로, 내가 내고 싶은 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꿈을 화들짝 깨게 해주는 연주회가 얼마전 열렸으니 디즈니 홀에서 있었던 첼리스트 장한나의 연주회였다. 오랜만에 남편과 아들, 그리고 USC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조카를 대동하고 클래식 콘서트 연주장에 들어섰다. 그때 조카 원진이가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연주회가 조금 지루할 지도 몰라요. 무반주인데다 연주곡도 바흐 것 하나 빼고는 현대 작곡가들의 곡이거든요”
오케스트라 협연은커녕 피아노 반주도 없는 무반주 첼로 독주라… 미리 프로그램을 살펴보지 않고 온 것이 후회되었고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평소 클래식과 관계없이 음악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과 아들이 두시간을 어떻게 견딜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기우였다. 장한나의 첼로 퍼포먼스는 사람을 완전히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 나무랄 데 없는 최고 수준의 연주는 말할 것도 없고, 그윽하고 격정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첼로의 소리가 드넓은 디즈니 홀에 울려 퍼지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제 스물두살인 장한나가 그 휑한 무대 한 가운데 홀로 앉아서 그 모든 청중의 쏟아지는 시선과 귀를 홀로 다 책임지며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자신을 도와줄 단 한명의 연주자도 없이 홀로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은 장하게도 보였고, 고독하게도 느껴졌으며, 한편 너무 아름답고 감동스러워 한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음 하나 하나와 함께 움직이는 장한나의 표정은 어떤 위대한 배우의 공연을 보는 것보다 생동감 있고 감동적이었다. 그녀의 수많은 표정들은 곡의 음색들을 하나하나 해석해주듯 풍부하고 진지했으며 다양했다.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감정이 들어간 음색이 나오는 것일까.
첼로를 연주해보고 싶다는 소망만을 가졌지 첼로 혼자만의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첼로라는 악기 하나로만 그렇게 감동적인 콘서트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첼로라는 단조로운 악기에서 그렇게 많은 소리가 만들어져 나오는지도 처음 알았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굵고 낮고 풍부한 저음 뿐 아니라 여인의 흐느낌처럼 가늘고 높다란 고음, 연인들의 속삭임처럼 감미로운 노랫소리, 강렬하게 감정을 호소하는 부르짖음이 다 들어있었다.
연주하는 동안 장한나는 첼로라는 악기가 된 것 같았다. 그녀와 첼로가 하나가 되어 만드는 소리가 나의 마음과 영혼을 깊이 흔들고 울렸다. 격정적으로 움직이는 두 팔, 그녀의 거친 호흡소리마저 나를 사로잡았다. 바로 저것이 내가 하고 싶었던거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갑자기 첼로가 두려워졌다. 그리고 저토록 엄청난 에너지와 집중을 필요로 하는 일을 ‘취미’로 가져보겠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심해지는 것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관심없는 사람이나, 가까운 연주장에서 장한나의 첼로 독주회가 열린다면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말 색다른, 새로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하다, 장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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