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4-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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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중남미 독립과 아메리카 제국

제281. 아메리카제국 21. 2차 대전 5. 기갑전
2차대전의 인명피해는 군·민간인 합쳐서 대략 5,000만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와 맞먹는 인명이 목숨을 잃었다.
히틀러가 얼마나 많은 인명을 살해하였는가 보자.
자국민인 독일인이 사망한 것은 별도로 유대인 600만, 집시 100만, 소련 민간인 800만, 연합군 병력 900만, 소련군 포로 500만 등으로 언뜻 계산해도 대략 3,000만명 정도 된다.
이와 같이 악마적이고 미 이성적인 목표를 향한 그의 집착과 광기는 결국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을 낳았던 것이다.
독일군의 단기간의 전격적인 승리는 하인즈 구데리안 장군이 개발한 전차와 장갑차로 이루어진 기갑사단으로 세계전 사상 최초의 전격전 개념을 도입한 것이었다. 연합군의 가장 뛰어난 전차인 ‘마틸다’는 두꺼운 장갑을 씌운 거대한 전차였으나 문제는 보병이 걷는 정도의 속력밖에 내지 못하는데 있었다. 너무 무거운 데다 엔진 용량이 작아 속도가 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반면 독일군 전차는 장갑의 두께는 얇았으나 시속 25마일의 속도로 움직이면서 재빨리 적의 방어선을 뚫은 다음 적군의 후방을 교란시킬 수 있었다.
또 한가지 새로운 독일군의 병기는 급강하 폭격기였다. 그것은 ‘융커 87B 슈투카’로 속도는 240마일로 매우 느렸으나, 명중률이 뛰어났으며 특히 조종사들이 전투기에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호루라기를 달았기 때문에 급강하 시에 높은 비명소리를 냈기 때문에, 그 소리는 연합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와 같이 독일군은 고속 전차와 이를 뒷받침해 주는 급강하 폭격기를 이용한 새로운 전투 방식을 개발한데 반하여 연합군은 1차대전 당시의 전투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40년 5월10일 서진을 시작한 독일군을 방어하기 위하여 포진한 연합군은 독일 군대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군작전의 중추부대인 보병이 없었던 것이다. 전통적인 군대에서 근본이 되는, 걸어서 전장까지 행진하고 땅 위에서 싸웠던 보병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는 이제까지의 전투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전혀 새로운 전투방식의 포진이었다. 독일군은 속도가 느린 보병 대신 최전선에 고속부대라고 부를 수 있는 기갑사단과 자동화사단을 배치했던 것이다.
연합군 지휘부는 처음 보는 이러한 포진에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연전연패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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