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려한 색채가 준 삶의 여유

2005-04-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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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센터 전시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유화‘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명언이다. 명화 한 장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뮤지엄에서 한 장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화가가 살았던 시대의 아픔, 그의 가슴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여인, 당시의 생활상과 풍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정지돼 있던 그림이 활동사진이 되어 돌아가는 것처럼.
꽃들이 찬란하게 피어 대지를 물들이는 이 계절, 언제라도 좋은 게티 센터를 다시 한 번 찾는 이유는 로렌스 알마 타데마 경(Sir Lawrence Alma-Tadema, 1836~1912)의 유화 ‘봄’(Spring)을 눈이 시리도록 들여놓기 위함이다. 그의 나이 58세 때인 1894년에 그린 ‘봄’은 가로 31.5인치, 세로 70.25인치 크기의 캔버스에 오일로 그려졌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화가였던 그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영국에서 보냈다. 빅토리아 왕조의 폐위와 함께 그의 작품은 비난을 받기 시작한다. 급기야 존 러스킨은 그를 가리켜 19세기 최악의 화가라고까지 혹평한다. 1973년 러셀 애쉬에 의해 그의 전기와 화집이 출간되고 나서야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빅토리안 시대 때는 봄이 최고조에 달하는 5월 1일 이른 아침, 어린이들을 시골 들판으로 보내 꽃을 꺾어오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렇게 꺾어온 봄꽃들로 그들은 찬란한 봄날을 축하하는 축제를 벌였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 경은 이런 빅토리아 시대의 풍습을 그가 사랑하는 고대 로마 시대의 배경과 결합시켜 화폭을 장식했다. 머리에 화관을 쓴 여인네들과 어린이들이 꽃을 들고 플로라 여신의 신전을 내려와 세레랄리아(Cereralia) 축제 퍼레이드를 벌이는 광경은 백 년이 지난 오늘날,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한다. 바구니에 가득한 꽃을 흩뿌리는 소녀들의 하늘거리는 드레스와 맨발은 때묻지 않은 거룩한 관능미를 보여준다.
그림의 배경은 실제가 아닌 상상의 결실이다. 폼페이의 벽화, 박카스 신전의 부조, 눈부신 대리석 건물, 코린트 기둥 등 그가 좋아하는 고대 로마 건축물들의 요소를 그는 자신의 그림 속으로 가져왔다. 이렇게 세세하게 표현한 건축물들은 그의 그림에 고아한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악기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그는 그림 속에 피콜로, 팬파이프, 탬버린을 그려 넣었다. 한참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에서 파파게노가 들고 다니던, 새소리 닮은 경쾌한 피리 소리가 세월을 뛰어넘어 들려오는 것 같다.
그는 친구와 가족 등 친숙한 얼굴들을 축제 참가자의 얼굴로 그려 넣기도 했다. 오른쪽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경꾼으로는 음악가 친구인 조지 경, 릴리안 헨셀과 그의 딸 헬렌 헨셀의 얼굴을 그렸다. 그림 한 가운데 꽃을 들고 있는 아리따운 소녀는 그의 딸 애나와 로렌스다.
‘봄’이라는 작품을 위해 역사적 고찰 등 8개월 동안 쏟아 부은 노력의 열매는 이 그림 한 장으로 맺어졌다. 할리웃 초기 시대 세실 드밀의 1934년 작 영화, 클레오파트라에는 바로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장면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그림에 나오는 라틴어 문장은 마치 조선시대 남인화의 화제(畵題)처럼 멋들어진다. “태양이 꽃의 화려한 색채를 창조하듯 예술은 우리 삶에 색채를 부여한다.” 그래, 그의 그림으로 인해 우리 삶은 더욱 풍성하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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