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4-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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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중남미 독립과 아메리카 제국

제278회. 아메리카제국 18. 2차 대전 2. 진주만 공습
유럽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 동안 미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초창기에 미국의 루스벨트는 대공황 위기를 수습하느라고 유럽 사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제1차 세계대전에 늦게 참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33만여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은 유럽 제국의 싸움이라면 고개를 흔들었다.
유럽의 분쟁에 휘말리는데 진저리가 난 미국은 1935년 ‘중립법’이라는 것을 제정하여 모든 교전국에 대한 무기 판매를 금지시켰다. 미국은 고립주의를 택하였던 것이다.
그동안 독일은 프랑스 점령을 필두로, 1940년 여름이 되자 서유럽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유럽 전역이 히틀러에게 장악되자 불안해진 미국은 ‘무기대여법’을 통과시켜 유럽 우방에 탱크, 전투기, 전함 등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1941년 12월7일 일요일 하와이 시간 아침 7시, 350여대의 일본 전투기들이 1, 2진으로 나뉘어 진주만을 기습하였다. 불과 몇 십분 동안에 이루어진 두 차례 공습으로 전함 2척이 격침되었고, 19척이 전복되거나 파손되었으며, 항공기 292대가 대파되었고, 2,500명이 죽고 1,200명이 부상하였다.
진주만 공습으로 전 미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루스벨트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였으며, 일본과 방위조약을 맺고 있던 독일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여, 미국은 일본, 독일, 이탈리아와 교전에 들어갔다. 일설에는 고립주의가 팽배해 있던 미국의 루스벨트가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임박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쟁 계획에 걸림돌이 되는 고립주의를 끝낼 수 있는 전환점으로 공습을 방치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공습의 정보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여론을 바꾸기 위하여 적의 기습을 방치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인명의 희생이 있었으며, 그 진실은 지금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실 일본과 미국의 전쟁은 필연이었다. 아시아의 자원 및 태평양의 지배권을 둘러싼 일본과 미국의 충돌은 언제고 일어날 일이었다.
일본이 군국주의화와 산업화가 될수록, 그리고 야망은 어느 서구 제국주의 열강보다 작지 않으나 아무 것도 생산되는 것이 없는 섬나라 일본으로서는 밖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의 밖에는 이미 전세계를 식민화한 서구 제국이 있었던 것이며, 더 큰 일본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그들과의 건곤일척의 전쟁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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