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5-04-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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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끼리 놀기

여자들은 나이 들어가면서 여자끼리 노는 것을 좋아한다. 여자끼리 노는 것이 맘도 편하고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중년여성에게 관심 가져줄 남자들도 더 이상 없는데다 유부녀가 되어서 남자들과 히히덕거릴 수도 없는 일이고, 대체로 남편 포함 남자들이란 여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미국에 사는 한인여성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억척스레 일을 하는 수퍼 맘들이므로 때로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맘껏 즐길 레저가 필요한데, 이때 여자끼리 놀고먹고 수다 떠는 일이 가장 쉽고도 좋은 발산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미국여자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가끔 미국신문들을 보면 고급호텔들이 여자들만을 위한 패키지를 만들어 홍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You Go, Girls’ ‘Girls Night In’ ‘Just between Us’ 등으로 이름 붙여진 이 패키지들은 여자 고객들에게 리무진 서비스, 샴페인, 꽃, 룸에서 받는 네일 서비스, 고급식당에서의 식사, 로맨틱 DVD 등을 제공함으로써 여자들이 모든 스트레스에서 떠나 호텔방에서 마음껏 호사를 부리도록 유혹하고 있다.
또한 요 몇년새 미국의 중년여성들 사이에는 파자마 파티가 유행이라고 한다. 소녀시절로 돌아가 정크 푸드를 먹으면서 밤새 유치하게 놀아보는 파티인데, 이로 인해 파자마 패션업계의 판매고가 지난 해 20%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와 나의 경험에 비추어 여자들끼리 모여서 하면 좋을 놀이 몇가지를 소개한다.
▲화장배우기-메이컵 아티스트를 초청해 전문가의 손길로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미모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놀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데 화장 지운 얼굴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분장 수준의 화장을 하는 친구를 초대하는 것은 그래서 재미있을 것이다.
▲와인 테이스팅-이 놀이는 와인에 대해 웬만큼 잘 아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또한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유는 술이 깨야 집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나-땀도 빼고 수다도 떨면서 음식도 시켜 먹을 수 있는 여유로운 만남이다. 그러나 이 놀이는 아주 친한 사이에서만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난히 몸매가 좋은 친구는 초청하지 않는 것이 모두의 정신건강상 좋다.
▲샤핑-이 놀이는 돈이 든다. 공동의 돈보다 각자의 돈, 특히 그날 ‘샤핑발’을 받는 사람은 얼마나 쓰게될 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고 가는 것이 좋다.
▲영화보기-이것은 어두운 극장에서 모두 스크린만 응시하다 일어나게 되므로 놀이라고 하기엔 참여도가 적지만 가장 쉽고 편하며 돈도 적게 들기 때문에 언제나 즐길 수 있다. 영화 보기 전이나 후에 식사나 커피를 함께 하면 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좋은 식당 가기-남가주 일대에는 예술 같은 음식을 서브하는 고급 레스토랑이 산재해 있다. 그런 곳에 가서는 여유를 갖고 최대한 즐기겠다는 자세로 와인과 칵테일 등 음료로부터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와 커피까지 두세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다 음미해야 한다. 일인당 50~100달러는 써야 하므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놀이를 찾는 것이 좋다.
▲노래방 가기-누군가 노래를 매우 잘하거나 분위기를 띄울 사람이 있어야 한다.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잘 못하는 친구들끼리 가면 노래 메뉴책만 들여다보며 빨리 해, 너부터 골라, 하면서 아까운 시간, 즉 돈만 축내게 된다.
이런 여러 놀이중 내가 즐겨 하는 것은 좋은 식당 가기와 와인 테이스팅이고, 스트레스가 풀리고 오랜 시간 흉금 없이 수다도 떨 수 있어 유익했던 놀이는 사우나 가기, 그리고 가장 재미있었던 놀이는 화장 배우기 시간이었다.
이외에도 맨날 말만 하고 벼르는 놀이 한가지는 라스베가스에 가는 것이다. 목적은 갬블링이 아니라 럭서리하게 놀기 위한 것.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스파와 마시지 서비스를 받으며, 밤에는 쇼를 보며 즐길 수 있는 라스베가스는 꼭 한번 다녀오자고 친구들과 철썩 같이 약속한 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아직까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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