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4-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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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중남미 독립과 아메리카 제국

제275회. 아메리카제국 15. 보너스 군대
1931년이 되자 미국 대공황의 여파는 유럽으로 파급되었다. 아직 전쟁의 상처도 아물지 않은데다 전시 부채의 부담 때문에 유럽의 위기는 심각하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모든 나라가 대랑 실업과 가공할 인플레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으며, 가장 불길한 징조가 느껴지는 곳은 독일이었다.
전쟁의 피해가 가장 컸던 독일은 전후의 경제적 재앙으로 배상금을 갚지도 못했으며, 또 붕괴된 경제 하에서 극기로 버티고 있었다. 그 독일 국민들에게 희생의 책임을 다른 나라에 돌리고, 1차대전 패전 후 영토 분할 때 여러 곳으로 분산된 독일 국민들을 재결합시키겠다는 선동으로 히틀러는 권력을 잡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된다.
대공황이 극에 달했던 1932년 여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대부분이 퇴역병들로 구성된 2만5,000명의 군중이 유개화차에 분승하여 수도인 워싱턴으로 밀어닥쳤다.
그들은 1924년에 약속하여 1945년에 지급하기로 되어 있던 퇴역병들에 대한 보너스 지급을 의회에 요청하기 위하여 온 것이었다.
가족과 함께인 무일푼의 이들 유랑자 무리는 버려진 건물들을 무단 점거하여 주저앉거나 강변을 따라 판잣집과 텐트로 이루어진 야영지를 만들었다. 대규모 홈리스 촌이 생긴 것이다.
굶주리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는 일자리도 없었고 또 앞으로 일자리를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도 없었으며 오직 허기에 지친 가족들만 있을 뿐이었다. 이들은 단지 살기 위해서 보너스를 받아야만 했다.
그들의 간청은 대통령인 후버와 의회에 의하여 거부되었으며, 당국은 그들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군대를 동원하였다.
그 대규모 홈리스 집단을 쳐부수기 위한 군대의 지휘관이, 독자들이 친숙한, 더글러스 맥아더였으며 부관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다. 거기다 선봉인 기병대의 지휘관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사막의 여우 롬멜의 전차군단을 패주시킨 패튼 소령이었다.
기병대와 육군은 홈리스 집단에게 탱크, 총검과 체류탄으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들은 쓰레기 같은 텐트촌을 깡그리 뭉갠 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이 전투의 결과 10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수도에서 쫓겨난 보너스 군대는 뿔뿔이 흩어져서 다른 방랑자 무리와 합류하였다. 이런 방랑자들이 전국에 수백만명이었다. 그 후로도 실업자와 굶주린 자들의 시위와 폭동이 여러 번 일어났으나 모두 무자비한 경찰력과 군대에 의하여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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