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친구 ! 고맙네…

2005-01-0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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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한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왔다. 새해가 오면, 어김없이 여러 가지 일들을 계획하고, 반드시 행하리라 각오와 다짐을 한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담배를 끊겠다, 건강을 챙기는 일, 여행을 할거다, 사업을 확장하겠다, 꼭 멋진 애인을 만들겠다 등등의 크고 작은 일들을 계획하곤 한다.
우리 선교회의 형제자매들이 계획하는 것은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나눔을 빠져나가리라. 속히 저 세상 속에 들어가 돈도 실컷 벌고, 술도 실컷 마시고, 단지 ‘약’만 안 하면 되지 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계획을 남몰래 세운다. 그러나 계획은 역시 계획일 뿐. 계획대로 세상이 다 된다면, 실패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가슴 치며 고통받을 이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사는 것이 계획만 가지고 되질 않으니, 누구는 돈을 벌지 못하고 싶어서 안 버는 이가 어디에 있으며, 공부를 못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이가 어디에 있을까? 건강하지 않고 싶은 이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바람과는 달리 꼬이고, 또 꼬이는 것이 인생인 것을… 이런 인생들인데도 불구하고, 누구는 불평과 불만으로 분통을 터트리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작은 것에도 너무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어릴 적 친구가 말기 암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옛 어른들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흰머리가 점점 늘기 시작하면서 사랑하는 할머니가, 친구들의 부모님이, 가까운 친지들이,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몇년 전 한 친구를 보냈고, 이제 다시 한 친구가 가야할 길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슬펐다. 공부도 많이 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는데… 믿음도 신실한 네가 왜 그러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용납할 수 없지만, 거부한다고 현실이 피해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친구는 이러한 나의 마음과는 달리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아직까지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며, 두 발로 걸어서 교회를 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살게 된다 해도 감사하겠지만, 더더욱 감사한 것은 이제 곧 죽음 뒤에 있을 천국에 간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친구를 보면서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감사하고 살았는가?’ 자문해보았다. 나에게 주어진 축복을 바라보며 감사했고, 나에게 베푸는 주변환경이나 사람들로 인해 감사했다. 신체적으로 불편한 이들을 보면 ‘나는 그래도… 보다 나으니까’하며 감사했고, 빈곤한 처지의 이들을 만나면 ‘나는 그래도… 먹고사니까’, 커다란 사건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나는 그래도… 그런 고통 속에 있지 않으니까’ 그래서 감사하고, 감사하였다. 남의 불행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감사를 느끼곤 했었는데. 믿음이 있노라 자랑하면서도 늘 감사의 조건은 나보다 못한 이들과의 비교에서 나왔었는데. 과연 나보다 훨씬 나은 조건의 행복한 이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행복하니까 나도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느껴보았던 적이 있었는가? 가장 어려운 일과 힘든 일을 겪으면서 가슴 깊숙이 참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았는가? 나의 감사는 언제나 이기적이었고, 형식적이었으며, 기준이 늘 ‘나, 나, 나, 나였다.’ 부끄럽기만 했다. 앙상한 뼈만 남은 친구의 얼굴은 평안했고,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초라하였다. 보여지진 않지만, 더 많은 것을 넉넉하게 갖고 있는 그 친구는 마지막 준비하는 그 순간까지 부족하기만 한 나에게 한 수 가르쳐 주었다. 진정한 감사를 말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딱 한가지 계획이 있다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를 내 사전에 ‘사촌이 땅을 사면 너무나 행복하다’로 바꾸기로 했다. 먼저 앞서서 나를 기다릴 그 친구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그 친구의 가슴을 내 가슴에 옮겨 심어 보는 한해가 되기를 소원해 본다. 친구! 고맙네.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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