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터에서 짐정리

2005-01-0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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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거의 10년을 살던 집에서 이사를 했다. 이사하는 일이 엄두가 안나 오늘내일 짐싸는 걸 미루고 또 미루다 막바지 이사가는 날이 코앞에 닥치자 짐 정리를 시작하는데 정말 짐싸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두 식구 사는데 웬 짐이 그렇게나 많은지, 버릴 것만 정리하는 데도 사나흘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과감하게 버리려고 마음먹었는데도 이건 이래서 아깝고 저건 저래서 놔둬야할 것 같아 자꾸 망설이게 되는 내 마음을 그래도 다시 한번 되잡고 버리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아마 이사하기 한달 전, 큰언니를 이 세상에서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픈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난 아마도 이제는 별로 소용이 없어진 그 물건들을 또 싸가지고 이사를 왔을 것이다.
갑자기 암이라는 선고를 받은 큰언니를 보러 급작스럽게 서울을 다녀온 지 석달만에 다시 장례를 치르러 서울을 다녀오면서 나는 굳게 마음먹은 것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꼭 짐 정리를 하자. 그리고 소용없는 물건은 아낌없이 처분하자.
본인의 죽음에 대해서 인지할 시간도 없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큰언니는 원래 결벽증이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집안을 쓸고 닦고 해서 우리 여자 형제들을 무척이나 피곤하게 했었다. 방안에 머리카락 한 올 있는 것도 못 참아 했고 다른 집에 가서도 주부가 손을 먼저 씻지 않고 주방기기를 만지면 그 집에서 식사도 잘 못했다.
그랬던 언니를 땅 속에 묻고 돌아온 날, 나머지 여자 형제들이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카들보다는 아무래도 우리들이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형부한테 양해를 구하고 짐 정리를 시작했는데 다음날까지 커다란 쓰레기 봉투로 28개나 나왔다.
워낙 그 집에서 오래 살았던 이유도 있지만 언니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것들이 다락이며 창고에서 엄청나게 나왔던 것이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에서나 샀을 것 같은 옷가지들, 이미 유행이 지났어도 한참 지났을 물건들이, 언니한테는 너무나 소중하고 긴요하게 쓰였던 그것들이, 남아있는 형제들 눈에는 그저 남루하고 누추해서 모두 쓰레기 봉투 속으로 들어갔다.
어쩜 언니는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을까, 돈 나가는 것은 하나도 없다며 궁시렁거리며 치우는 언니들 눈에는 이미 눈물이 넘쳐난 지 오래였다. 그렇게나 유난스럽게 깔끔을 떨더니, 우리가 자기 물건을 이렇게나 거침없이 치우는 걸 알면 저 세상에서도 얼마나 속상해 할까.
정리할 짐의 양이 많아서 속상한 게 아니라 그저 초라해 보이는 언니 물건들 때문에 우리들은 울면서 그 짐들을 정리해야만 했다.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니까 그가 쓰던 그 물건들은 그렇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다.
누구의 물건인들 그렇지 않을까. 본인한테는 추억이 깃들여 있을 수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사연이 숨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남들한테는 그저 그만그만한 물건으로밖에는 비치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내 물건 치워줄 친정식구 한 명 없이 외돌톨이로 미국에 혼자 나와 사는 나는 꼭 필요한 물건만 놓고 살고 가능하면 쓸데없는 물건들은 다 치우기로 그날 이후로 결심했었다.
옷장을 비우고 수납장 잡동사니도 정리하고 이미 읽었던 책들은 도서관에 기증하고… 얼마간 여유 있어진 공간을 바라볼 때마다 막힌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하다.
내친 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올해엔 마음속도 한번 뒤집어봐야겠다. 미움이나 원망, 분노 등은 내다버리고 얼마간은 내 마음을 좀 비워둘 생각이다. 조급히 뭔가로 채우려고 애쓰지 않고 그렇게 빈 마음으로 한번 살아봐야지, 잘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영화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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