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Hola! amigo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2004-12-3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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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회. 멕시코 7. 사빠따의 민중혁명 2
사빠따의 혁명군이 정부군을 격파하고 농민들의 합류가 증가하면서 봉기한지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모렐로스 지역을 평정하였다. 수도를 목표로 진군하는 혁명군과 정부군과의 전투가 치열해짐에 따라 독재자 디아스는 파리로 망명했고 정부 체제는 붕괴되었으며 임시 정부가 출범하였다.
임시정부 출범 후 혁명 주체인 사빠따와 마테로간의 토지 분배에 대한 의견 불일치는 일시 무장해제를 했던 사빠따군의 재무장을 불러왔으며, 마테로를 배제한 사빠따의 독자적인 혁명의 길을 가도록 만들었다. 재차 정부군과 전투를 시작한 사빠따는 정부군을 계속 압박했으며, 마테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양자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으며 그 와중에서 대통령 마테로가 우에르따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정권을 잡은 우에르따는 사빠따를 회유하려고 애썼으나 사빠따는 단호히 그들이 제시한 당근을 뿌리치고 계속 수도로 진군하였다. 북쪽의 빤쵸 비야와 오브레곤군에 의하여 남북으로 압박 받던 우에르따는 더 견디지 못하고 정권을 내놓은 후 피신하였다. 뒤를 계승한 카란사 정부도 결국 혁명군을 진압하지 못하고 베라크루스로 쫓겨갔으며, 1913년 1월 드디어 사빠따군-비야 연합군은 멕시코시티를 점령하였다.
북쪽에서 혁명군을 이끌고 남진하던 Pancho Villa는 누구인가? 사빠따와 연맹하여 북부에서 혁명군을 일으킨 인디오 빤쵸 비야는 미국의 지원을 업고 있는 당시 대통령 카란사에게 치명타를 입히기 위하여 멕시코 북부를 여행중이던 미국인 열차 승객 10여명을 살해하였고, 국경 너머 뉴멕시코 주까지 쳐들어가 일단의 미국인 광산 기술자들을 살해하였다.
격분한 우드로 윌슨 미대통령은 퍼싱 장군을 멕시코로 보내 비야를 잡도록 했다. 하지만 계략에 능한 무법자를 추격하는 일은 바람을 잡으려는 일만큼이나 무모한 일이었다. 비야는 9달 동안이나 도망 다니며 미군을 멕시코 영토 깊숙이 끌어들였다. 이일로 카란사는 더욱 불안하게 되었으며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었다. 할 수 없이 윌슨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퍼싱을 미국으로 소환하였다.
사빠따는 혁명아로서의 기질보다 ‘인간 사빠따’ 로서의 체취가 더욱 강하다. 수많은 농민들이 그를 따른 것은 소외와 가난이라는 구조적 억압을 벗어나기 위한 의지이기도 했지만, 사빠따라는 인간의 개인적 매력과 카리스마 그리고 동질성에 더욱 끌렸던 것이었다. 그는 백마를 타고 솜브레로를 쓴 모습으로 허리에 권총을 차고, 그들이 쓰는 똑같은 거친 말투로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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