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떡볶이

2004-12-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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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흠뻑 뒤집어쓰고 지글지글 끓고 있는
매콤하고 쫄깃한 너의 맛에 우린 반했다

문 스트럭에서 셰어와 함께 출연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가 한국이라는 나라와 이처럼 깊은 인연을 맺게 될 줄 몰랐다. 이달 초 부인 앨리스 김과 한국을 찾은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얘기다. 서울의 호텔 식당에서 부인과 한정식을 먹으면서도 특별히 주문한 음식은 길거리에서 파는 떡볶이였단다. 처음으로 떡볶이를 먹어봤던 건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문구점에서였을 게다. 시뻘겋게 고추장을 뒤집어쓰고 있는 떡볶이는 미술시간 준비물 살 돈을 털어서라도 사먹어야 할만큼 유혹적이었다. 10원에 3개였는지 4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결국은 10원짜리 하나를 더 내고 말았고 아주머니는 두 개 정도 큰 맘 먹고 덤으로 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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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케이지 커플도 한국 갔을때 특별 주문한 음식이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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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복님 할머니의 신당동 떡볶이 재료.


옛날에‘떡찜’이라 불리던 궁중 음식
요즘 맛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 개발설
라면·달걀·야채등 추가 조리법 다양

요즘도 서울 길거리의 리어카에는 으레 떡볶이가 있다. 깔끔 떠는 사람들이야 기겁을 하겠지만 한 십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따로 접시를 사용하지 않고 커다란 철판 위의 떡볶이를 요지로 찍어 먹었다. 양념이 조금 더 필요할 때는 치아 자국이 선명하게 난 떡을 다시 푹 집어넣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았다.
떡볶이는 옛날에 ‘떡찜’이라 불리던 궁중음식. 수랏상에 오르던 고급 메뉴였단다.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잠시 떡볶이가 언급되지 않던가. 일본에서 고추가 들어온 것이 선조 때의 일. 아직 일반화되기는 시간이 걸렸을 터이니 그 당시 떡볶이는 그리 맵지 않았을 거란 짐작을 해본다.
떡볶이의 탄생에 관해선 또 다른 설이 있다. 예전에는 설날과 대보름이 지나면 군것질 거리가 딱히 없었다. 냉장고도 귀하던 시절, 설날에 만들었던 떡이 오래갈 리가 있나. 서서히 가래떡에 생기기 시작한 곰팡이를 떼어내 고추장과 양념을 함께 넣고 볶아 먹다보니 떡볶이란 음식이 탄생됐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떡볶이는 1953년 마복림(83) 할머니가 개발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마씨는 중국집에서 주인이 건네준 떡을 먹다가 유레카의 순간을 맞았단다. 고추장 등 한국 양념을 떡과 같이 요리하면 뭔가 굉장한 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 마씨는 곧 밀가루 떡에 그녀만의 고추장을 이용한 비밀 소스를 섞어 작은 노점에서 팔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떡볶이는 이렇게 탄생해 그 후 서울 거리음식 문화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마복림씨는 신당동 떡볶이의 원조이기도 하다.
마복림 할머니의 식당 주소: 서울시 중구 신당 1동 300-18 전화: (02) 2232-8930. 지하철 5호선 청구 역 하차 1번 출구 신당동 떡볶이 거리.
떡볶이의 종류는 기본 떡볶이, 카레 떡볶이, 치즈 떡볶이, 고구마 떡볶이, 잡채 떡볶이, 해물 떡볶이, 오징어 떡볶이, 쇠고기 떡볶이, 자장 떡볶이, 궁중 떡볶이, 기름 떡볶이, 피자 떡볶이, 케첩 떡볶이, 라볶기 등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다양하다. 양념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즐길 수가 있다. 가장 정통이야 고추장이겠지만 한 때 인기 있던 압구정 식 떡볶이는 간장으로 보다 세련된 미각을 자극하던 음식이었다.
떡볶이의 빨간 고추장 국물에는 무엇을 넣어 비벼먹어도 맛있다. 길거리 리어카에는 떡볶이와 함께 오뎅, 튀김 만두, 김말이, 야채 튀김, 순대 등을 팔고 있는데 보통 차가워진 이 음식들은 떡볶이 국물에 넣고 이리저리 비벼대면 마치 금방 만든 것처럼 맛있어진다. 그래서 떡볶이 전문점에서는 온갖 재료를 사리로 넣기도 한다. 위의 재료들은 물론이요, 라면, 쫄면, 당면, 야채, 삶은 달걀 등을 추가로 마련하는 것. 사리를 모두 넣다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양념 고추장을 더 넣어야 할 경우도 있다.
떡볶이로 유명했던 동네가 있다. 그룹 디제이 DOC의 노래에도 등장하는 신당동 떡볶이 집. 전골냄비에 떡과 온갖 사리를 얹고 고추장과 양념을 넣어다주면 테이블 위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맛있는 떡볶이가 완성된다. 본래 우리 민족이란 것이 뭔가 앞에서 지글지글 만들어가는 과정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설날 떡국을 끓이고 남은 가래떡으로 떡볶이를 만들며 옛 추억을 맛보자.

■길거리 떡볶이: 고춧가루와 고추장, 설탕, 다시다, 소금, 물로 양념을 만들어 끓인 후 양배추, 양파, 오뎅, 떡, 다진 마늘을 넣는다. 라면과 깻잎, 만두 등 사리는 취향에 따라.
■궁중 떡볶이: 쇠고기를 적당하게 잘라서 볶은 후 떡, 간장, 꿀, 설탕, 후추, 마늘, 그리고 갖은 야채를 넣는다. 간이 맞으면 파, 물엿, 참기름을 더한다. 끝으로 깻잎을 적당한 크기로 넣어주면 그 향기가 맛을 더해 준다.
■혼자 야밤에 만드는 떡볶이: 프라이팬에 물과 고추장을 알맞게 넣는다. 떡과 오뎅, 라면 야채 스프, 설탕, 다시다, 고춧가루를 넣어 끓이면 끝.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갑자기 먹고 싶은 데 도저히 재료가 없을 때 이용하면 좋은 조리법.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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