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들과 함께하면 감사가 넘쳐요”

2004-12-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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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종 장애인 돌보는 여고생 그레이스 유 양

10학년인 그레이스 유(15)양은 매주 토요일 오후가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하고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고교시절, 솔직히 어떨 때는 숙제가 너무 많아 집에 있을까 생각도 들지만, 토요일만 되면 어김없이 타인종 발달장애인 학교에 자원봉사를 나간다. 조슈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친동생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조슈아는 초등학교 4학년. 평상시는 조용히 제 할 일을 알아서 하다가도 갑자기 큰 소리로 웃고 한번 발동이 걸리면 통제가 힘든 발달장애인이다. 인터뷰를 위해 토요학교를 찾아간 날도 그레이스는 그림을 그리던 조슈아를 데리고 화장실로 가서 손을 함께 씻고 있었다.

“조슈아가 발달장애인이라고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노력하다가 지칠 때 그냥 손을 내밀 뿐이에요. 저희들도 그렇잖아요. 부모님에게 무조건 의존하기보다는 혼자 하려고 애쓰며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커가잖아요. 물론 평범한 우리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무척 느리지만, 조슈아에게도 자립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로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레이스는 조슈아를 만난 이후 한번도 토요일 자원봉사를 빠진 적이 없다고 했다.
미술, 음악, 행동치료, 싱어롱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실시되는 토요학교는 과목마다 교실을 바꾸어 진행한다. 물론 담당강사가 별도로 있어 홀로 방치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조슈아가 혼자서 교실을 돌아다니는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저려오고, 자신이 없으면 조슈아가 한 구석에서 울고 있을 것만 같아서다.
조슈아에게 힘이 되는 친구이고 싶다는 그레이스는 고교에 진학하면서 자원봉사활동으로 영락 스페셜 프로그램의 멘토를 선택했다. 친구들처럼 집 근처 병원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레이스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학교 카운슬러에게 추천을 받아 자원봉사자로 등록한 후 만난 동생이 조슈아. 처음엔 어쩔줄 몰라 당황한 적도 많지만 이젠 조슈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 보람을 느끼고 사랑이 싹트고 있음을 느낀다.
“막상 이 곳에 왔을 때 많은 친구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서 놀랐어요. 같은 고교생인 샌 첸(17)과 다이애나 줄라키앤(17)은 저처럼 커뮤니티 봉사 크레딧을 받을 수 있어 열심히 한다지만, 2년이 넘게 발달장애인의 친구역할을 자청하는 대니얼은 순수한 영혼과 열정을 지닌 믿음직한 동생이에요”
그레이스양이 소개한 대니얼 이(13)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교회 장애인 사역인 소망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토요학교가 개강되면서 당연히 자원봉사자로 합류했다. 대니얼은 “부모님을 따라 교회 봉사에 참여했을 당시는 장애인들을 처음 접해 봤기 때문에 선뜻 친구 되기가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학교 친구들과 같이 친근감이 느껴지고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스스로 장애인을 대할 때마다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음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는 이들은 다가오는 새해 소망이 하나 있다.
“친구들도 함께 봉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간직하고 있어요. 물론 막상 이들을 대하면 처음의 저처럼 두려움이 앞서겠지만, 함께 어울리다 보면 곧 동생처럼 예뻐하며 돌봐줄 수 있으리라 믿거든요”

<글·사진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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