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문 활짝 열린 ‘아름다운 주말로’

2004-12-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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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이웃 찾아간
‘사랑의 화음’

별다른 일 없이도 괜스레 마음이 들떠오는 성탄과 연말연시. 하지만 그 시기에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회색 벽 양로원에 살고 있는 연장자들이 바로 그들. 물론 항상 외롭고 쓸쓸한 평상시와는 달리 이 즈음에는 방문자들도 꽤 된다.
하지만 그 방문에 따뜻한 마음이 더해지지 않을 경우 그 가슴 시림은 차라리 찾는 이 없는 것보다 더하다.
“지훈아, 정현아. 빨리 준비해. 할아버지 뵈러 가야지.” 그레이스 권(49, 주부)씨는 시아버지에게 가져다드릴 선물 꾸러미를 챙기며 아이들을 채근한다.
평소에도 주말이면 세 아들, 남편 권성태(50, 건축업)씨와 함께 아버님을 뵈러 가지만 오늘 아침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세 아들 모두가 단원인 윌셔 연합감리교회 어린이 합창단(단장, 에스더 리)이 할아버지가 계신 중앙 양로 병원을 방문, 공연을 펼칠 예정이기 때문이다.
두 부부가 모두 생업에 종사하다보니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아버님(권혁기, 82)을 간호하고 보살펴 드리기가 어디 생각처럼 쉬운 얘긴가.
아버님의 뜻을 따라 오랜 숙고 끝에 양로 병원에 모시긴 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죄스런 마음이 있는 건 이들 부부의 효성이 그만큼 지극하단 얘기일 게다.
주말 오전 10시 30분. 백발에 주름 가득한 얼굴이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해 주는 양로 병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윌셔 연합감리교회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강당은 울긋불긋 크리스마스 장식이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를 연출해준다. “모두 이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공작 시간에 만든 것들이어요.” 중앙 양로 병원 이인석 간호원장이 굴뚝 옆에 놓아두는 스타킹 모양의 장식품을 가리키며 말한다.
빨간 색 산타 모자를 쓰고 초록 목도리를 두른 손자뻘 되는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뼉을 치며 즐겼다. 나이 들면서 화난 것도 아닌 평상시 모습이 자꾸만 굳어지는 게 얼굴 표정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귀여운 율동을 바라보며 아래로 쳐져 있던 입술 끝이 차츰 풀어져 위로 향하며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거동이 쉽지 않은 노인들에게 있어 이런 방문자가 아니면 꽃이 피는지, 성탄절이 오는지 도대체 알 바가 없다. 어린이들이 불러주는 징글벨과 오 거룩한 밤, 선율을 듣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또 다른 성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공연을 마치고 난 어린이 합창단은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를 준비해 온 떡, 음료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린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김행자 할머니(80)에게 준비해온 카드와 떡을 드리는 새라 리(10) 양은 할머니를 꼭 껴안아 드린다.
밤톨처럼 귀여운 세 손자들이 단원들 틈에 서서 공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권혁기 할아버지도 흐뭇함에 자꾸만 손뼉을 친다. 손자들은 물만 줘도 잘 자라는 나무들처럼 하루가 다르게 키도 쑥쑥 크고 몸집도 단단해진다. 나도 저러던 시절이 있었겠지, 손자들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잠시 헤아리기도 아득한, 살아온 세월들을 반추한다.
내 안으로만 침잠하면 더욱 외롭고 가난해지는 게 마음이다. 이웃에 나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마음의 눈을 돌려보자. 올 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게 기억될 테니까.


LA 인근의 양로병원들

▲벌링턴 양로병원 845 S. Burlington Ave. Los Angeles, CA 90057. (213) 381-5585
▲그랜드 팍 양로병원 2312 W. 8th St. Los Angeles, CA 90057. (213) 382-7315
▲아든 테라스 양로병원 1240 S. Hoover St. Los Angeles, CA 90006 (213) 382-8461
▲중앙한인양로병원 676 S. Bonnie Brea St. Los Angeles, CA 90057. (213) 483-9921
▲올림피아양로병원 1100 S. Alvarado St. Los Angeles, CA 90006. (213) 487-3000
▲벨 양로병원 4900 E. Florence Ave. Bell, CA 90201. (323) 560-2045
▲브라이어 오크 양로병원 5154 Sunset Bl. Los Angeles, CA 90027. (323) 663-3951
▲버질양로병원 975 N. Virgil Ave. Los Angeles, CA 90029. (323) 665-5793
▲앨콧 양로병원 3551 W. Olympic Bl. Los Angeles, CA 90019. (323) 737-2000
▲선마 양로병원 1720 W. Orange Ave. Anaheim, CA 92804. (714) 776-1720
▲오렌지카운티 한인 양로병원 1051 Bryan Ave. Tustin, CA 92780. (714) 832-6780
▲콜로니아 양로병원 10830 Oxnard St. N. Hollywood, CA 91606. (818) 763-8247


양로병원 방문 시 주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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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자 할머니에게 떡을 드리고 포옹을 하고 있는 새라 리 양.

가져갈 음식의 메뉴는 병원의 책임자와 의논한다. 노인들이 잘 못 먹는 음식 종류들이 유난히 많다. 방문 날짜와 시간 역시 의논해야 한다. 양로병원 자체의 프로그램도 있고 연말에는 많은 단체들이 방문하기 때문. 여흥 프로그램은 너무 길지 않게 준비한다. 참여를 유발하는 프로그램도 좋지만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글·사진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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