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4-12-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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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올해도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에 며칠이 걸렸다.
해마다 12월에 들어서면 선물해야할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하고, 빠진 사람은 없는지 몇 번 확인한 다음에, 누구에게 무엇을 선물할 것인지, 어디서 무엇을 사야할지, 언제 어디로 샤핑갈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일로 쓸데없이 마음이 분주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준비한 선물을 각각 언제 만나서 전해줄 수 있는지를 챙기는 일인데, 연말이면 다들 바쁘고 때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선물이 해를 넘기는 경우도 생긴다.
올해 나는 약 30명의 선물을 준비했다. 친구들, 가족친지, 나의 직장동료, 남편의 직장동료, 아들의 몇몇 선생, 대충 그 정도인데 아무리 최소한으로 잡아도 그 이하로 줄일 수는 없었다.
선물 품목은 늘 거기서 거기다. 특별히 누구를 위해 점찍어둔 물건이 있지 않은 한 향수, 비누, 양초, 목욕용품, 차(tea), 초컬릿, 와인 같은 것이 가장 만만한 아이템인데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샤핑하기란 매우 힘들기 때문에 평소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물건을 보면 미리 사다놓는 것이 큰 도움이 되곤 한다.
엊그제 월요일이 D 데이였다. 그날 저녁 남편과 아들의 비웃음 가운데 모든 선물과 포장용품들을 꺼내놓으니 방안에 가득하였다. 요즘엔 선물을 포장지로 싸는 것보다 예쁜 샤핑백을 대신 사용하는 추세라 포장지와 박스 외에도 수많은 샤핑백들과 백을 채워 넣을 보푸라기며 색색의 얇은 습자지(gift tissue) 등 선물장식들이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따라서 포장에만 적지 않은 돈을 쓰게되는데 막상 다 싸고 나면 언제나 반 이상 남아서 후회하는 일을 매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분주하게 목록을 대조해가며 한참 싸다보니 갑자기 이 모든 일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금 싸고 있는 이 선물들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생각해보니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받고 싶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선물들을 열심히 싸서 누구에겐가 주려고 하는 거지?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해야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할 수는 없는 계절인 탓이다. 그래, 일년에 한번인데, 그동안의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다같이 정리하는 거야, 라고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넘기기엔 너무 많은 시간과 돈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 때 선물은 개인적인 터치가 들어가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작위 선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음보다 형식이 앞서는 것이다.
신문사에서 일하다 보면 나 역시 적지 않은 선물을 받는다. 그런데 주신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그 선물들 역시 나에게 아무런 쓰임새가 없는 물건일 경우가 다반사다. 그중 정말로 내게 소용되지 않는 물건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누군가의 선물로 ‘재활용’하게되는데 받은 선물을 남 주거나 다시 싸서 선물하는 행위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내가 전혀 쓰지 않는 것, 뜯지도 않은 것을 그냥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얼마전 나온 통계를 보니 미국인들도 연말연시 선물의 40% 이상을 ‘리사이클’한다고 하였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런 선물을 주고받는 것일까, 정말 좋은 선물, 누구에게나 기쁨이 되는 선물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과연 있는 걸일까?
지난주 예배에서 우리 교회 목사님은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선물은 ‘예수의 탄생’이라고 하셨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예수의 사랑과 은혜가 크리스마스의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평범한 진리를 선물포장더미에 묻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올해 크리스마스는 선물들을 끌러보며 환호하기보다, 포장되지 않았지만 가장 값비싼 것, 돈주고 살 필요도 없지만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 살아있음, 나의 가족, 햇볕, 공기, 자연을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다 싸고 보니 정작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선물은 빠져있으니 말이다. 남편과 아들, 두 사람은 가장 가까운 탓에 언제나 가장 멀리 밀리고 마는 비운의 남성들인 것을, 오 주여, 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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