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Hola! amigo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2004-12-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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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회. 멕시코 1. 독립
이번 회부터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매일 같이 만나서 같이 생활하는 Latino인 Mexicano의 본국 M?ico에 대하여 알아보자.
멕시코 독립운동의 선봉은 멕시코 북서쪽으로 위치한 Dolores 교구의 신부인 Miguel Hidalgo 주임신부였다. 그는 1810년 9월 일군의 농민들을 이끌고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수많은 농민들이 모여서 거대한 군중이 된 그들은 “과달루페 성모 만세!, 악독한 정부여 물러가라!, 가추삔(당시 중남미에 거주하던 스페인 본국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호칭)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광산촌인 과나후아토시로 진군하였다. 그들은 과나후아토시의 거리를 휩쓸며 눈에 띄는 백인은 모조리 처형하기 시작하였다.
놀란 Criollo(중남미에서 출생한 스페인계 백인)들이 그들에게 등을 돌린 채 왕실군과 협력하여 폭동 진압에 나섰다.
농투성이로 구성된 오합지졸인 군중은 정규군인 왕실군에게 간단히 진압되었으며, 반란군의 선봉인 Hidalgo 신부는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이달고 신부의 처형 후에도 그의 심복이었던 Jos?Morales 사제는 게릴라 부대를 조직하여 멕시코 각지에서 출몰하면서 정부군을 괴롭혔으나, 그 역시 1815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1821년 반란군 진압사령관인 Agustin de Iturbide가 왕실군 2,500명을 이끌고 모렐로스의 잔당과 대치중인, 그 해 12월 ‘Iguala 계획’(온건한 형태의 독립선언으로 게릴라들과 Criollo들의 지지를 동시에 끌어낸 선언)을 발표하고 총부리를 거꾸로 든 다음 한편으로는 왕실군과 전투를 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에스빠냐 식민 당국과 협상으로 정권을 이양 받게 된다. 당시의 스페인 식민정부는 현지 주둔군의 숫자도 미미한 데다 증원군을 기대할 수 없어 거의 전투를 포기하고 정권을 이양하였다.
얘기가 옆으로 나가지만 식민지를 통지하는데 꼭 많은 머릿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수억의 인도를 통치하던 본국 파견 영국인들은 1,000명에 불과했고, 조선을 식민지로 병합한 일본이 조선에 주둔시킨 병력도 2만명이 안 되었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아마 2,000만은 넘었을 것이다.
1822년 정권을 잡은 Agust? de Iturbide는 뒷골목 여기 저기 돈 봉투를 뿌려 장삼이사들로 하여금 위대한 Iturbide가 황제에 즉위하기를 원한다고 소리 지르고 다니게 만든 후, 국민의 여망(?)에 따라 황제에 즉위하나 1년도 못 채우고 반대파에 체포되어 1823년 처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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