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한민국이 미국을 먹다

2004-12-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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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영어는 무지하게 못하게 되고, 한국말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어릴 때 알았던 한국말이란, 거의 나쁜 말들, 상스러운 표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가끔 사자성어도 쓰고 어려운 말들을 쓰기도 한다.
그러면, 괜히 내 스스로가 멋있어 보이고 기특해 보인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틀릴 때도 있다. 어쩌다 사자성어 하나를 배우면, 꼭 써먹고 싶어서 아무 데나 쓰거나 속으로 생각했다가 비슷한 내용의 대화가 시작되면, 얼른 다른 이들의 말을 막고 잘난 척해 창피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실,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이들보다도 한국말을 잘하는 이들을 훨씬 더 부러웠기 했기 때문이다. 1.5세로 어릴 때부터 “나는 과연 누구인가?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라는 고민이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후련한 해답을 얻었다고 느꼈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벌써 이민생활 30여년이 지나간다. 미국시민으로 살아가고, 투표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나라 하면, ‘대한민국’을 지울 수 없다. 남의 나라에서 주인처럼 살고는 있지만, 가슴 한 켠에는 내 나라 내 조국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떠나질 않고 언제나 살아서 숨쉬고 있다.
선교회에서는 거의 한국말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형제자매들은 영어권이다. 처음 들어올 때는 영어만 사용했던 아이들이지만, 선교회에 입소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띄엄띄엄이라도 한국말로 말하고, 듣는 습관이 자연스레 길러지게 된다.
아이들의 한국말이 느는 만큼 한국인이라는 긍지도 생긴다. 보이지 않는 애국심도 싹튼다. 자신들 스스로 그동안 논란됐던 정체성이 서서히 정립되어 간다. 잃어버릴 수 없는 민족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이유가 존재하기 시작되는 것이다.
어떤 녀석은 “나, 밀크 먹어 싶어” “안경 입어”라고도 말하고, 목사인 나에게 “야~ 밥 머거”라고 말해서 옆에 있는 녀석에게 “목사님이라고 해야지”라고 혼쭐나기도 한다. 심지어는 “목사님, 똥(떡) 먹어”라고 하는 녀석도 있었다. 그래도 녀석들… 노력하는 모습들이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이 생각난다. ‘주인공이 학교를 빠지려다가 학교에 갔다. 보통 때와는 다르게 혼내지 않는 선생님은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고 하였다. 베를린에서 명령하여 학교에서 더 이상 프랑스 말로 수업을 하지 못하고, 독일어로 수업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선생님은 프랑스 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언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국민이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국어만 잘 지키고 있다면 스스로 감옥의 열쇠를 갖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하면서 흑판에 분필로 ‘프랑스 만세’라고 크게 써 놓았다.’
우리 나라의 일제치하 36년도 마찬가지였다. 문화말살 정책으로 한국말 사용을 못하게 했었다고 우리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창시개명을 하지 않았던 우리의 어른들과 끝까지 국어를 지켜나간 이들이 있었기에 결국 해방을 맞이하였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지켜온 자랑스런 한국말이 미국에 오늘날 살고 있는 많은 부모님들에 의하여 본의 아니게 말살돼 간다는 사실이 참 서글프다. 무조건, 영어, 영어, 영어만을 강조하다가 부모 자식간에 대화조차도 힘들어지게 만들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 자녀들을 만들게 된 것이다. 나도 옛날에는 바나나 1.5세였다.
그러나 이젠 한국말이 너무나 좋다. 한국말은 정감 있고, 영어로 표현되지 않는 사람 냄새가 나는 단어들이 참 많이 있어서 더 좋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이 영어를 못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한국말을 못한다는 것은 수치일 수 있음이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귀중한 우리말을 우리 모두가 지킬 수 있다면, 비록 미국 땅에 와서 생활을 한다해도, “혹시 한국말로 미국 전역을 뒤덮어 한국이 미국을 먹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부시가 한국말로 대통령 유세를 한다면…”이라는 깜찍한 상상을 꿈꿔본다.

한영호 목사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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