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사는 이야기

2004-12-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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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새로운 것으로의 기대, 12월

살면서 한 번도 이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을 나누던 사람들, 애완견이나 아끼던 물건 혹은 결코 손에 잡혀지지 않으면서 늘 우리의 등을 떠밀며 앞으로 나가게 하는 시간과의 이별이 순간 순간 우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12월이 시작되자마자 올해 첫 크리스마스 카드가 배달되었다.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친구인데 예정보다 일찍 고향에 다녀오게 되었다며 돌아오면 만나자고 그녀만큼이나 앙증맞고 꼼꼼한 글씨체로 써 내려간 카드. 혼자서 배시시 웃다가 문득 12월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어느새 연하장을 주고받을 계절이 되었단 말인가. 갑신년 새해를 맞으면서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같은 죽음의 바이러스 대신에 희망을 전염시키는 희망 바이러스 보균자들이 넘쳐 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쓴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의 허허로움에 잠시 맥이 풀렸다.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미련 없이 11월 달력을 넘겨 버리고 12월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던 친구처럼 나도 여유롭게 12월을 맞고 싶었다. 석별의 정도 맘껏 나누고 차분히 정리하고 싶었다.
선물 준비며 크리스마스 파티, 송년회 모임, 교회 주관의 자선행사 등등으로 12월의 달력은 빨간 동그라미와 표시 투성이다. 모르는 사이 이미 성큼 다가와 있었네, 라며 이 해의 마지막 달을 두루치기식으로 얼렁뚱땅 버무리기는 싫었다.
허나, 이별하는 것이 계획한 대로 차근차근 서서히 이루어지기 보단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어져 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다반사 아니던가. 그렇게 갑자기 며칠 전에 외할머니와 이 세상에서의 영원한 작별을 했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아흔 두 해 동안 흔한 성인병, 노인병 하나 앓지 않으셨다. 하루 전에 곡기를 끊으시더니 평안히 주무시며 먼길을 가셨다고 한다.
마지막 가시는 모습이 그리 깨끗할 수 없었노라고 들려주던 엄마의 음성이 수화기 저쪽에서 가볍게 떨렸다. 세상에서 ‘할머니’라고 부를 수 있었던 마지막 남은 한 분을 떠나보냈다.
외국에서 산다는 핑계로 찾아 뵙는데 인색할 때부터 할머니와의 이별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연로하실 때까지 어쩌면 충분한 이별의 준비기간이 주어져 있었는데도 어리석은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허리가 점점 굽어지고 기운이 약해지신다고 할 때 가볍고 멋진 지팡이 하나 사드려야지, 했는데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마도 앞으로 맘에 드는 지팡이를 보게 되거나 지팡이 짚은 노인을 만난다면 할머니 생각이 더 간절해질 것 같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아쉬움에 깊이 젖어들 겨를도 없이 어느 정도의 설렘을 섞어 마음을 졸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며칠 후면 태어날 조카 때문이다. 아기와 엄마가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기를 그저 기도할 뿐이다.
이별 뒤에는 새로운 만남이 있다고 했던가? 이별 후의 쓰리고 아픈 상처와 기억이 가물가물해 질 때쯤, 혹은 그보다 더 이른 때에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계획하거나 새로운 만남에의 기대로 설레고는 하지 않았던가.
들뜬 분위기 속에서 충분히 되짚어보지 못한 채로 또 한 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새 해, 새 달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에 성급하지만 작은 위로를 얻는다.
이별을 슬퍼하다가도 하루 밤사이에 바뀔 달력을 마주하고 서면 새 해에는 뭔가 다를 거라는, 달라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갑신년 12월을 서둘러 떠나보내기는 싫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이별이라면 좀 더 차분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담담하게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이미 예정된 새로운 만남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남은 12월을 지내고 싶다. 어차피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 아니던가.

성영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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