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결혼기념일

2004-12-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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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오늘은 아내와 나의 결혼 16주년 기념일이다. 고등학교때 만나서 우정과 애정을 나누며 결혼을 하기까지의 수많은 일들, 함께 나누었던 기쁨과 슬픔의 모든 순간들을 젊다못해 애티 나는 결혼사진을 뒤적이며 어렴풋한 기억 속에 떠올려본다.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중에 한숨을 자아내고 눈가에 미소의 주름을 지어내는 얘깃거리가 없는 커플이 있을까...그러나 추억에 젖어 결혼기념일을 맞는 것보다도 처음 사랑의 결심과 현재 나의 결혼생활을 돌아봄이 바람직하다 여겨진다.
결혼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두 번째로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어떻게 태어나느냐가 중요하고, 두 번째는 누구와 결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느 학교를 가고 어떤 직업을 가지며 어떻게 성공된 삶을 살아가는냐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좌우하고 결론짓는 것이 누구와 결혼을 해서 어떤 가정을 꾸미느냐에 달려있다.
또한 인간이 태어나는 것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결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어이없게도 다른 것들에 밀리는 것을 흔히 보게된다. 돈을 버느라고 결혼생활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평생 큰돈을 만져보지 못하고 또 앞으로도 큰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감사할 때가 있다.
많은 돈이 없어서 아내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번쩍이는 다이아목거리나 폼나는 밍크코트를 사줄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아내의 마음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을 고르는 데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큰 명예를 얻지 못했기에 오히려 쑥스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아내의 집안 일을 돕게 된다. 크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인데, 오히려 이 작은 일들이 아내와 나의 결혼생활에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것은 나의 소심한 핑계일까?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어느 책에선가 사랑에는 감정, 의지, 신뢰의 단계가 있다고 읽었다. 처음에는 감정으로 시작된 사랑이지만, 세월이 지나가고 서로 성숙해가면서 의지적인 사랑, 신뢰의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만으로는 사랑을 지속할 수 없고, 서로를 위해 노력하며 서로를 믿고 기대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하고 올바른 사랑은 이 모든 단계를 상대방을 향한 순수함과 열정을 가지고 헤쳐나가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얼마나 아내를 위해 노력하고 아내를 신뢰하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고 어떠한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 아닌, 나의 순수한 마음과 정성을 다해 얼마나 나의 아내,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노력해왔나 반성을 해본다.
더욱 미안한 것은, 나의 해야할 노력은 제대로 안 하면서 아내에게 대한 요구만 늘려왔다는 것이다. 오늘은 아이들도, 내 자신을 위해서도 아닌, 아내를 위해서 반나절이라도 시간을 내어보려고 한다. 아마도 처음 우정을 나눌 때 즐겼던 1번 해변도로의 드라이브를 재연하면서...

이 용 욱 목사
(하나크리스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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