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 2막, 그림으로 열었죠

2004-12-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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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주말나기 작품전 앞둔 61세 늦깎이 주부화가 소냐 인 씨

53세때 유방암 수술 받고 입문
암 날려버린 열정적 작품 활동

소녀 시절부터 가슴에 품어왔던 꿈. 그 하늘색 꿈을 이뤄내는 이들은 행복하다. 여학교 시절 이후 항상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소망을 키워온 소냐 인 씨(61, 주부, 의류 도매업)였지만 한국에서 볼리비아로, 또 다시 LA로 삶의 무대를 옮겨가며, 일하랴 세 남매 키우랴 바빠 꿈에 물을 주지 못했던 것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그녀에게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8년 전, 유방암 3기라는 잔인한 선고를 받고 수술실에 누워 그녀는 처음으로 깊이 있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쁘게만 살아왔는지,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그녀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생활에 가려 빛이 바래져 있던 꿈은 그렇게 다시 그녀에게 다가왔다. 화방에서 붓과 물감을 구입하며 그녀는 행복했다. 선무당 사람 잡을 만한 어떤 미술 교육도 이전에 받은 일이 없다는 건 행운이었다. 그녀는 자기 발로 찾아간 개인 교수 이형수 화백으로부터 그림 그리기의 기초부터 한 발짝씩 내딛기 시작했다.
4년 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녀가 그간 완성한 작품은 줄잡아 200점정도. 비온 뒤 하늘처럼 해맑은 수채화, 따뜻한 느낌의 파스텔화는 그녀가 아주 좋아하는 장르다.
좀더 풍부한 색감을 표현할 수 있는 아크릴화도 자주 그린다. 이제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유화를 시작해보려 한다. 직접 물레를 돌리며 빚어낸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예술을 향한 배고픔과 목마름은 그녀로 하여금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게 만든다.
지난 해 도산 홀에서 열린 6인 파스텔 전에 참가했던 그녀는 오늘부터 12월 9일(목)까지 정동 아트홀 갤러리에서 수 박(Sue Park)씨와 함께 ‘2인 미술전’을 갖게 된다. 그리움으로 살아온 우리들의 옛 이야기를 달빛처럼, 별빛처럼 화폭에 물들인 그녀의 그림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배어나온다. “사느라 바빠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지 못하던 동포들이 제 그림을 보며 그리운 시절을 회상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작품전을 앞둔 인 화백의 겸손한 바람이다.
해바라기, 아이리스, 매화, 버들강아지 등 봄날 정원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꽃들은 그녀의 화폭에서 더욱 화려한 빛을 발한다. 마티스와 고흐, 고갱의 원시적 강렬함을 사랑한다는 그녀의 취향은 화폭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남미에서 지낸 날들, 그녀의 뇌리를 사로잡았던 붉은 빛도 자주 등장한다.
좋아하는 것 하고 살아 행복한 영혼은 육체를 괴롭히던 병까지도 극복하는 법. 그녀는 지금 60생애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년쯤 우리는 또 어디서 그녀의 삶을 예찬하는 작품들과 만나게 될까.
2인 미술전, 12월 9일(목)까지 정동 아트홀 갤러리(505 S. Virgil Ave. Los Angeles, CA 90020. 213-387-5040). 리셉션은 3일 오후 5시.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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