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Hola! amigo 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2004-12-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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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회. 중남미의 독립 8. 시몬 볼리바르 3
에콰도르를 해방시킨 계기가 된 피친차 전투를 승리로 이끈 볼리바르는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그 경륜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피친차 전투에서 승리하고 Quito 시내로 진군해 들어갈 때 키토의 여성들은 모두 발코니에 나와 그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좁은 길거리로 꽃다발들을 집어던졌다.
그 가운데 한 여인이 볼리바르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날 밤 열린 승전 축하 연회장에서 그녀와 재회하였다. 그녀는 마누엘라 사인스였으며, 그 후로도 오래도록 이 낭만적인 영웅의 로맨틱한 생애를 한층 더 빛내주었다. 볼리바르는 자기가 해방시킨 5개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각각의 공화국은 부통령들이 통치하였다.
볼리바르가 비록 5개국의 대통령을 겸임하였으나 이미 내부적으로 분열의 조짐은 싹트고 있었다.
1830년, 공화국 독립에 대한 아무 준비나 철학이 없이 권력과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각 지역 토호들과 반란세력들을 제압하는데 지친 볼리바르는 더 이상의 권력을 포기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20여년간 전쟁터를 누비고 5개국을 해방시켰으며, 5개국 대통령을 역임한 영웅 볼리바르는 끊임없는 암살 음모와 권력에 대한 염증으로 그의 조국을 포기한 것이었다.
패배를 인식하고 고뇌에 찬 볼리바르가 죽음을 앞두고 되뇌었던 말이 있다. “이 세상에는 가장 멍청한 바보가 세 명 있다. 첫번째는 그리스도, 두번째는 동키호떼 그리고 마지막이 나이다.”
볼리바르는 Santa Marta의 한 침상에서 결핵으로 임종하면서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구술하였다.
“우리들은 혁명을 위해서 몸바치는 동안 배울 시간이 없었다. 아메리카는 이제 통치가 불가능하다. 마치 혁명에 몸을 내던진 사람이 바다를 경작하는 것처럼…” 볼리바르가 모든 희망을 상실하고 한 조그만 가옥에서 패배자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 날은 1830년 12월17일이었으며, 향년 47세였다.
볼리바르는 하나의 통일된 남미대륙을 원하였다. 북미의 미국이 하나의 연방으로 강력한 국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을 보고, 남미도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남미 전체가 어려우면 북부 지역만이라도 하나로 통일되기를 바랐다. 이와 같은 볼리바르의 꿈은 그가 생존해 있을 때까지는 Gran Colombia로 유지되어 왔으나, 1830년 볼리바르가 47세를 일기로 생을 마침으로서 2년 후인 1832년 그란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의 3개국으로 분열되었으며, 영웅의 꿈은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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