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틀박힌 삶의 ‘ 해방구 ‘

2004-10-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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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 미로체험

크레타의 미노스 왕은 자신의 아내 파시파에와 수소가 사랑에 빠져 낳은 괴물, 미노타우루스를 가두기 위해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을 짓게 했다. 만들어진 경위야 명예로울 게 없지만 인류는 미궁(미로)에 대해 깊은 애정을 보였다. 로마인들은 저택을, 그리고 중세인들은 성당의 바닥에 복잡한 문양의 미로를 장식하길 좋아했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는 미로 모양의 정원이 대유행했다. 미로는 예로부터 문학적 서사의 모델이기도 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문학 작품에, 그리고 클레와 키스 해링 등의 화가는 미술작품에 미로를 도입했으니까.
‘탈 근대적 미로’에는 입구도 없고, 출구도 없다. 따라서 입구와 출구를 잇는 유일한 해법도 없는 셈. 여기서 하나의 길은 다른 것들과 교차하고, 그 길들은 다시 또 다른 길과 어지럽게 만난다. 그런 미로가 있을까. 놀랍게도 있다. 어디에? 바로 여기,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자체가 하나의 무한한 미로라는 것이 요즘 철학자들의 생각이다. 안도 없고 밖도 없고, 입구도 없고 출구도 없는 세계. 하지만 어느 소설가의 말대로, 빠져나갈 희망이 없는 이 미로 속에서 현명하게 길을 잃는 자는 진리의 길을 발견할 터이다.
질서로 가득한 세계에 살다보면 혼돈이 그리워지는 걸까. 가끔씩은 이런 미로에 빠져 마냥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싶다.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갔던 여름 방학의 어느 날, 키가 장대같이 큰 옥수수 밭에 파묻혀 길을 잃던 경험은 없는지. 도시에서 사느라 흙을 밟아본 지 오래되다 보니 별의 별 기억이 다 그리워진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옥수수 밭을 헤매던 추억을 되살리고 싶다면 LA 근교의 옥수수 미로로 길을 나서보자.
시럽과 기름을 만드는가 하면 삶아 먹고 구워 먹고 튀겨 먹고 수프와 샐러드를 만드는 등 3,500가지의 사용 방법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옥수수. 이렇게 다양한 옥수수의 용도 가운데 또 한 가지가 더해졌으니 바로 옥수수 미로다. 평범한 옥수수 밭을 수수께끼투성이의 미궁으로 만든 옥수수 미로는 운동과 레저를 겸한 전혀 새로운 개념의 레포츠 공간이다.
옥수수 미로 회사(The MAiZE)의 대표, 브렛 허브스트(Brett Herbst)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로 컨설팅 회사 설립자. 농작물이 자라는 것을 보며 커온 그는 그 소중한 체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바람으로 옥수수 미로를 제작하게 됐다고 한다.
The MAiZE는 현재 미국과 캐나다, 유럽, 멕시코 등지에 625개의 미로를 디자인했다. CNN, USA Today, Time, National Geographic 등 주요 언론에서는 옥수수 미로를 집중 보도했고 1999년 그들이 만든 옥수수 미로는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만든 유타의 옥수수 미로는 1996년, 오픈 한 지 3주 만에 무려 18,000명이, 그리고 이후 수백만 명이 다녀갔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농산물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배울 수 있는 교육적이고도 독특한 이 레저는 빠른 속도로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아이들과 온 부모들은 옥수수가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자녀들에게 보여주느라 바쁘다.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온 자녀들은 그들 부모들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도록 천천히 걷는 모습이다. 연인들은 일부러 아무도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으로 가 입맞춤을 나누기도 한다. 학교 등 단체 손님들은 팀을 나누어 누가 빨리 미로를 빠져나오나 게임을 한다.
코로나의 8에이커 옥수수 미로(The MAiZE)는 11월 2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인 존 케리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케리케처로 만들어졌다. 10-12피트 크기의 옥수수 줄기 사이로 2마일이 넘게 디자인 된 미로는 헤매기 딱 좋은 구조로 돼 있다. 옥수수 미로 사이사이에는 곳곳에 Presidential History Trail을 두었다. 미국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질문을 맞히면 출구로 가는 최단 거리에 대한 힌트가 주어진다.
현재까지 제일 빨리 미로를 벗어난 기록은 35분만이지만 어떤 이들은 2시간 넘게 헤매기도 한다. 당신의 방향 감각과 출구를 찾으려는 의지는 어느 정도인지 한번 도전해 보자. 보통 사람들이 미로를 빠져나오는 데 드는 시간은 평균 2시간. 행사 관리 측에서는 키가 큰 옥수수에 가려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곳곳에 “Corn Cops”를 두고 있다. 그들은 고객들이 방향을 물으면 알려주기도 한다.


옥수수밭 주의사항


흡연 엄금… 복장은 간편하게
흡연, 옥수수 따는 것, 휴지 버리기는 금지돼 있다. 미로에 올 때는 운동화나 샌들 등 편한 신발을 신고 간편한 복장을 하자. 선 블록 로션, 모자 등 태양 빛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고 물을 항시 가지고 다녀야 탈수 현상을 막을 수 있다. 혼자서도 참가할 수 있지만 여럿이 팀을 이루어 하면 훨씬 재미가 더하다. 여러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참가해 내기를 한다면 아주 흥겨운 주말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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