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허허벌판에 목마만 덜렁

2004-05-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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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초라한 관광지 트로이 성, 극적 발굴효과 살리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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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성 입구에 세워진 목마. 만들어진 것이 너무 엉성해 과연 그 속에 병사들이 숨어 있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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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된 영화 ‘트로이’에 등장한 트로이 목마.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목마의 내부가 전혀 소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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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만 남은 트로이 성의 유적. 멀리 보이는 주택가가 3200년전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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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19세기 화가 웨스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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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지방의 소녀가 헬렌의 모습을 재연한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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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으로 트로이 성 발굴에 성공한 하인리히 술리만.

미녀는 비극을 부른다

트로이를 찾아간 사람들의 입에서 제일먼저 튀어나오는 말은 “내가 상상했던 트로이보다 너무 기대에 어긋난다”는 실망이다. 트로이는 이스탄불에서 자동차로 4시간 떨어진 거리에 있어 찾아가는 일이 쉽지가 않다. 큰 마음먹고 왔는데 보이는것이라고는 입구에 엉성하게 세워진 어린이 놀이터같는 목마와 토담들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원형이 보존된 이탈리아의 폼페이와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기념품 가게도 초라하다.
트로이전쟁은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때문에 트로이는 가상적인 도시국가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었다. 그러나 ‘일리아드’에 심취한 하인리히 술리만이라는 독일인은 트로이가 터키 다다넬스 해안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 할것이라고 믿고 사업에서 성공해 모은 돈을 트로이발굴에 다 쏟아 넣는다. 1873년 5월, 재산이 바닥나기 직전 술리만은 마침내 땅속에 파묻혀 있는 트로이성을 발굴하는데 성공해 이곳에서 얻은 금은보화로 거부가 된다. 골동품을 둘러싼 술리만과 터키정부간의 옥신각신은 당시 유럽신문들의 화제였었다.
트로이는 기원전 1200년께 소아시아에 존재했던 나라로 스파르타의 침공을 받고 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리스의 시인 호머가 기원전 700년전 사람이니까 호머도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서사시로 만든 셈이다. 트로이전쟁은 그리스여신들의 질투로 인해 일어난 비극이다. 악의 여신 에리스는 올림포스궁전 연회에 초대받지 못한것에 앙심을 품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고 쓴 사과를 파티장에 보낸다. 그러자 제우스의 아내 헤라, 딸 아테나(헤라가 낳은 자식이 아니다), 그리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기것이라고 주장한다. 제우스는 지상의 인간인 트로이의 파리스가 여자를 보는 눈이 있으니 가서 심사받으라고 명한다.
헤라는 자기에게 사과를 던져주면 권력과 명예를 주겠다고 파리스에게 제의한다.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의 승리를 선물할 것을 약속한다. 아프로디테는 자기를 선택해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제의를 택했다. 이때부터 트로이의 비극은 시작된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스파르타왕 메네라우스의 아내 헬렌이었다. 파리스는 헬렌을 꼬여 트로이로 돌아왔으나 격분한 메네라우스왕이 대군을 끌고 트로이로 처들어 온다.
요즘 헐리웃에서 ‘트로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여신들 관계는 일체 생략한채 스파르타의 명장 아킬레스(그림)와 트로이의 용장 헥터간의 대결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파리스와 헬렌이 살아남는 해피엔딩으로 끝나 일리아드의 오리지날과는 많이 다르다(일리아드에서는 아킬레스의 아들이 프리암왕과 파리스왕자를 죽여 아버지 원수를 갚는 것으로 되어있다).
트로이가 미국에 있다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한번 상상해 본다.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인형, 용장 아킬레스와 헥터의 대결을 모방한 게임, 트로이 목마를 흉내낸 각종 조각품, 트로이전쟁을 살린 놀이터등등 디즈니랜드에 버금가는 대규모 관광지를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를 상품화하는 기술도 뛰어난 상술이라는 것을 트로이에 가면 실감하게 된다.

이철 주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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