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사람의 주말나기 피아노 연주하는 김성수씨

2004-04-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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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인류 모두가 이해하는 또 다른 언어다. 영어, 프랑스어를 배울 때도 단어 하나 하나를 익히고 꾸준히 반복해야 입을 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기 역시 음표 하나 하나를 계속 연습할 때에 비로소 연결된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새로운 언어가 머리에 쏙쏙 박히듯 악기 또한 머리 다 굳어서 보다는 어렸을 적에 시작해야 효과가 있다.
먹고살기도 빠듯했던 것이 전후 한국이었다. 그 시절 초등학교 다니던 세대들이 현재 불려지는 이름은 중년. 요즘 어린이들이야 학교 끝나고 피아노에 수영, 태권도에 영어 레슨까지 과외 교육에 치어 살지만 당시에는 까만 고무신 신겨 학교에 보내준 것만도 고맙던 때다. 중년의 김성수(자영업)씨가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요, 축복이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하게 되면 음에 대한 감각이 빠르게 개발된다. 그가 별 다른 악보 없이도 좋아하는 가요와 팝송들을 매끄럽게 연주할 수 있는 감각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기 때문.
젊은 시절부터 피아노 앞에만 앉았다 하면 뭇 여성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았으니 아무 생각 없는 어린 자식에게 피아노 레슨 받을 기회를 부여해 주셨던 부모님들께 매일 감사의 예를 드려도 부족할 판이다.
피아노를 칠 수 있어 그의 삶은 더욱 풍요롭다. 피아노 있는 집에 저녁 초대라도 받을 때면 상을 물리고 난 뒤엔 항상 그의 독무대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제비 등 주옥같은 가요는 물론 Try to Remember, Feelings처럼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에 즐겨 듣던 노래들을 연주할라치면 같은 시대와 꿈을 공유했던 친구들은 눈을 지긋이 감으며 가슴 순수하던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일 마치고도 혼자 피아노를 치며 음악과 추억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지만 이웃들 때문에 참고 있던 그는 주말이면 제법 포르테로 연주를 한다. 추임새를 넣으며 박수를 치는 관객 하나 없어도 피아노 치면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서 너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자녀들이 죽기보다 피아노 레슨 받기를 싫어하는 걸 볼 때마다 그는 스스로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새나온다. 피아노를 칠 수 있어 그가 갖게 된 삶의 멋과 여유, 그리고 인연들은 더 없이 소중하다. 다시 어린 시절이 돌아온다면 말 그대로 엉덩이에 땀띠 날 정도로 열심히 연습을 할 것 같지만 우리모두에게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추억 속의 날들이 되어 버렸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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