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녀 생일파티

2004-03-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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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생일파티

볼링장에서 생일파티를 하면서 고사리 손으로 무거운 볼링 공을 굴리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부모가 조금만 관심을 쏟는다면 아이들에게 추억에 남을 만한 생일파티를 해 줄 수 있다.

‘톡톡 이벤트’로 동심에 추억심기

가끔씩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며 유치원 때 생일 파티 사진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머리에는 종이로 만든 왕관을 쓰고 생일 상을 받으며 어지간히 즐거워하는 모습이 과연 나의 예전 모습이 맞나 싶다. 매순간 죽고 새로 태어나는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어머니 뱃속에서 몸을 받아 이 세상에 처음 소풍 나온 날은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날이 된다. 자아 의식이 형성되어 가면서 모든 것의 차별화를 기뻐하는 아이들. 케이크에 붙인 촛불을 ‘후’ 불며 소원을 비는 생일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들 가운데 하나다. 매해 다시 돌아오는 생일이라고 대충 차려주려 했었다면 이제 그 생각을 고쳐먹자. 그들의 삶에서 여섯 살, 일곱 살의 생일이 다시 오지는 않는다. 그 나이 때는 나름대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던가.

시부모님 환갑 잔치만큼 자녀들의 생일파티가 중요한 것은 그 통과의례가 그들의 자아의식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안하무인격의 왕자 병, 공주 병 환자를 길러내자는 게 아니다. 내가 소중하고 특별한 만큼 다른 이들도 더없이 귀한 존재들이란 깨달음은 어린 시절의 생일 파티에서부터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랄 때처럼 동네 친구들 불러다 불고기 점심 정도 차려주면 더할 나위 없이 호사스런 생일 파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해. 요즘 어린이들의 생일 파티는 전문 프로듀서가 연출한 듯 잘 짜여진 이벤트 수준이다.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더라도 어린이들이 신나게 뛰어 노는 점프 보울(Jump Bowl)을 대여하고 우스꽝스런 분장의 광대를 초빙하는 건 기본. 패밀리 레스토랑, 볼링 레인, 테마 공원에서는 어린이들의 생일 파티를 위한 다양한 맞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 좀더 특별한 잔치를 계획하는 부모들의 수고를 덜어준다.
소피아 백(37, 주부)씨는 지난 주말 아들 앤드류 군(6)의 생일 파티를 치러주었다. 앤드류가 킨더가튼에 입학하고 난 뒤 그 동안 주말마다 아들 클래스메이트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돼 다니면서 마음속에 적잖이 부담감이 쌓였던 게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아들은 물론이고 초대받은 친구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만한 생일 파티를 치를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녀는 동네의 볼링 레인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생일 파티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 주말 버뱅크의 픽 윅 보울(Pick Wick Bowl)에서 치른 앤드류의 생일 파티는 대성공이었다. 주말 오후 앤드류와 친구들을 맞은 볼링 레인은 풍선이 두둥실, 색색의 리본까지 둘러져 근사한 생일 파티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볼링 레인에 초대된 20여 명의 학교 친구들과 동네 친구들은 저마다 조금은 제 몸무게에 버거운 공을 굴리며 즐거운 표정들이다.

공을 안고 가다 미끄러지는 친구를 보며 깔깔 웃어대는 아이, 무게가 실리지 않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공이 슬로우 비디오 돌아가듯 천천히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 어쩌다 운 좋게 핀들이 모두 넘어지면 깡충깡충 하늘로 뛰어오르고 박수를 쳐대며 좋아하는 모습이 어디에다 눈을 갖다 대도 사랑스러운 그림들이다.
어린이들이 던진 공은 도대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알 수가 없다. 힘차게 던진 것 같은데 신통치 않은 점수를 내는가 하면 힘없이 비실비실 굴러가다가 스트라이크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어떻게 자라날 지 예측하기 힘든 어린이들의 모습과 어찌 그렇게 꼭 같은지.
음식은 보울링 레인에서 차려준다. 보통 피자와 닭 날개 요리에 소다로 차려진 심플한 메뉴지만 어린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인기 ‘짱’이다. 이제껏 다녔던 다른 친구들의 파티 음식도 별다른 것은 없어 그저 핫도그, 햄버거, 샌드위치, 랩, 타코 등 단순한 것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생일 파티 장소에는 친구들 20명에 그들의 부모와 동생까지 모두 모여 적잖이 복잡하다. 약 한 시간 정도의 게임이 끝나고 난 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생일 상 앞에 모두 모였다.
케이크에 촛불이 켜지고 오늘의 주인공 앤드류 군을 에워싼 어린이들이 “해피 버스데이 투유”를 목청껏 불러준다. 친구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으며 짓는 앤드류의 머쓱한 표정이 친구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 나이 때는 친구들이 가져온 선물보다 함께 신나게 노는 것이 중요한 법이다. 신발, 옷, 장난감 등 반짝이는 포장지에 쌓여진 선물들에 앤드류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초대된 앤드류의 친구들을 위해 소피아 백씨는 학용품과 캔디를 골고루 넣은 선물 꾸러미(Goodie Bag)를 준비했다.
클래스메이트들과 동네 친구들의 생일 파티를 다니느라 어린이들은 주말이 더 바쁘신 몸들. 자녀들의 생일 파티를 근사하게 꾸며주다 보면 어린이들은 매 주말 생일 파티만 다니더라도 별다른 프로그램 없이 주말을 특별하고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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