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엌 이야기’(Kitchen Stories)★★★★

2004-02-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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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이야기’(Kitchen Stories)★★★★

폴케가 높은 의자에 앉아 이삭의 식사행위를 관찰하고 있다.

따뜻한 인간관계 그린 끝장면, 감동적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두 홀아비의 침묵대결

과학과 인간성의 갈등을 통해 타인과 타인의 필요에 응답할 용의가 있는 우리의 마음 문 개방능력을 인간적이요 상냥하면서도 우습게 그린 매력적인 노르웨이 코미디. 공상과학 영화와 초현실적 기분을 느끼게 되는 매우 쾌적하고 재미있는 영화다.
50년대 초. 주부들의 부엌일을 간편화하는 초현대적 방안을 고안해낸 스웨덴의 가사연구협회가 이 방안의 효율성을 한번 더 실험하고 또 이웃 나라에까지 좋은 일을 한다는 명목 하에 18명의 조사원들을 노르웨이로 파견한다. 이번 테스트의 대상은 홀아비들.
영화의 중심인물은 둘 다 고독한 조사원 폴케(토마스 노스트롬)와 대가로 말 한 마리 얻는 줄 알고 연구대상이 되기로 응한 이삭(요아힘 칼마이어).
폴케는 이삭의 집 밖에 세워둔 달걀모양의 초록색 캠퍼에서 기거하며 아침이 되면 이삭의 부엌을 방문, 이삭의 부엌 행태를 주시하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한다. 고지식한 폴케가 정장을 하고 테니스 심판 의자를 닮은 높은 의자 위에 올라앉아 부엌에 들어와 식사를 하고 차를 끓이는 이삭의 동태를 관찰하는 모습이 무언극(조사관은 대상자와 대화를 나누어도 또 그를 도와 주어도 안 된다)처럼 진행된다.
한편 고집 세고 과묵하며 혼자 있기를 고수하는 이삭은 폴케의 조사행위를 사보타지 하기 시작하면서 폴케의 임무를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매일 같이 두 고독한 남자가 한 공간에 있으면서 둘 사이에는 어느덧 따뜻한 인간 관계가 맺어지고 이를 알아챈 폴케의 상관은 노발대발한다.
마지막 장면이 가슴 뭉클하게 아름다운 인간의 친절을 강조한 훌륭한 작품이다. 대사도 적고 출연 인물도 많지 않지만 조용한 가운데 인간이 진정 필요한 것을 넉넉하게 얘기한 영화로 연기와 촬영도 좋다. 감독 벤트 하머.
성인용. IFC 뉴아트(310-281-8223, 26일까지), 사우스코스트 빌리지(800-FANDANGO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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