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축업 하는 스티브 김씨

2004-01-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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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품에 ‘생명’불어넣는 기쁨


스티브 김(40, 건축업)씨는 참 주말이 바쁜 사람이다. 사람들의 사연과 역사가 묻어있는 골동품은 늘 그를 흥분시킨다. 지난 주말 그는 동네의 그라지 세일을 돌아다니며 또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있는 책상을 구입했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책상이 15달러. 믿을 수 없을 만큼 싼 가격만이 그로 하여금 바쁜 시간 쪼개 가며 거라지 세일을 돌아다니게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한때 누군가가 애정을 갖고 만든 가구가 천덕꾸러기처럼 내버려지는 것이 못내 가슴 아프다. 자신의 숨결이 더해져 그 가구가 맨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영광, 아니 그 이상의 빛을 드러내는 순간 그가 느끼는 기쁨과 만족의 강도는 비교할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을 정도다.
15달러 주고 산 책상은 페인트칠이 많이 벗겨져 있었다. 이걸 어떻게 변신시킬까 책상과 대화를 나누며 궁리를 하는 그는 대리석 안에 감추어져 있는 본래의 숨결이 드러나도록 도와준 것에 불과하다고 자신의 업적을 폄하하는 미켈란젤로에 다름 아니다.
그는 일단 샌드 페퍼를 이용해 얼룩덜룩한 페인트칠을 벗겨낸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손으로 문지르다가 손가락 끝에 불이 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아무리 기계를 이용하지만 샌드 페퍼 질은 결코 쉽지 않다.
칠이 모두 벗겨진 책상은 아름다운 원목의 나뭇결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색깔이 있는 페인트칠도 괜찮겠지만 이렇게 고운 나무 본래의 색을 보니 투명한 듯한 느낌의 코팅을 입혀 광택만 내는 것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집에는 그라지 세일과 스왑밋, 플리 마켓에서 주워온 가구들이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의 섬세한 터치가 더해진 고가구들은 값비싼 앤티크 샵에서 사온 것처럼 중후하고 우아하다.
자신이 직접 고친 의자에 앉을 때 그가 갖는 안식은 심연처럼 깊다. 얼마 전 50달러를 주고 구입한 축음기에 LP 레코드를 얹고 음악을 감상하며 그는 사파리 중에 축음기로 모차르트를 들었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 핀치 해튼이 된 듯한 감상에 사로잡힌다.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자신의 터치를 더하기 좋아하는 그는 얼마 전 지붕 아래 비어있는 공간을 발견해 그 죽어있던 공간을 다락방으로 개조했다.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할 정도로 낮은 지붕 아래 매트리스를 놓았더니 알프스의 산장에라도 온 것처럼 아늑한 분위기다.
그와 그의 아내는 요즘 넓은 베드룸을 놔두고 이 다락방에서 신혼처럼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붕과 바닥이 닿는 공간에는 그 좋아하는 차를 종류대로 진열대 놓고 방석에 앉아 다도를 즐긴다. 생활 가운데 창조하는 은근한 멋이 차향에 실려 낮은 지붕 다락방을 타고 흘러내린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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