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으로 삶에 도전한 헤밍웨이

2004-01-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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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에 매달리지 않고 인간의 의지 자살로 테스트한 노벨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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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사용하던 서재. 그는 이 서재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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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집이 어디죠? 키웨스트를 찾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다운타운에 있는 그의 집은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그는 이집에서 두번째 부인과 10년 동안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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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웨스트의 해밍웨이 박물관에는 60여마리의 고양이가 어슬렁거려 관광객들을 놀랜다. 그는 고양이를 이상하리만치 좋아했다. 살아생전에는 집에 50마리의 고양이를 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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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부인 하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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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부인 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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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부인 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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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부인 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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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웨스트 전경. 왼쪽 빨간집 근처에 헤밍웨이의 집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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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침실. 박물관 직원이 그와 폴린이 살던 집의 내력을 설명하고있다.

’파란만장의 생애’라는 신파조의 단어는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일생에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그가 살아온 과정은 로맨스와 모험으로 가득 찬 한편의 영화다. 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비 오는 듯한 총탄 속을 뚫고 들어가 부상자들을 들쳐업고 나와 은성무공훈장을 타는가 하면 파리에서 살며 ‘잃어버린 세대’의 작가들과 어울려 카페를 드나들고, 스페인전쟁 때는 프랑코 총통에 반대하는 쪽에 서서 종군기자를 지냈으며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는 이때 얻은 경험으로 쓴 소설이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자신의 낚시보트를 개조하여 독일 잠수함 U보트를 수색하러 다니고 독일포로 심문관을 자원했으며, 쿠바 내란에서는 카스트로에 반대하는 지하조직을 도왔고, 아프리카 탐험대로 참가하여 두 번이나 경비행기 추락에서 극적으로 살아났다. 결국 그는 이때 입은 부상이 말년에 도져 고통을 받게 되며 이 때문에 자살하게 된다. 그의 생애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다. 상상으로 소설을 쓴 작가가 아니라 발로 뛰어 글을 쓴 작가다.
헤밍웨이는 1926년 ‘태양은 다시 뜬다’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태양은 다시 뜬다’는 성불구자와 칼멘 같은 바람기 있는 여인과의 관계를 소재로 한 것이며 그의 파리 시절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이어 내놓은 ‘무기여 잘 있거라’는 그의 1차대전 참가 경험을 살린 것이다. 헤밍웨이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밀라노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이때 자신을 치료해 주던 아그네스라는 간호사를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프로포즈 하지만 7세나 연상인 아그네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 나오는 천사 같은 간호사 캐서린이 바로 아그네스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바다와 노인’은 헤밍웨이가 나이가 먹은 후 저술활동이 슬럼프에 빠져 모두 그의 창작활동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내놓은 홈런(?)이다.
헤밍웨이는 네 번이나 결혼했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여성은 이 4명의 부인들이 아니라 교사 출신인 그의 어머니였다. 그는 어머니를 싫어한 정도가 아니다. 증오했다. 헤밍웨이의 아버지는 권총자살을 했는데 어머니의 지나친 강한 성격이 아버지를 죽음에 몰아넣었다고 그는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격이 강한 여자를 제일 싫어했고 부인이 자신에게 간섭하면 이혼도 서슴지 않았다. 아들이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을 ‘외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하지만 아들이 어머니를 미워하고 아버지를 좋아하는 정반대 성격은 ‘헤밍웨이 콤플렉스’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어머니에 대한 증오에 영향 받아 그는 눈뜨고 자는 것처럼 항상 여성들을 사랑하면서도 너무 가까이는 못 오게 했다.
헤밍웨이는 명예와 돈, 미인 등 남이 부러워하는 세상적인 재산을 모두 갖고 있던 사람이다. 그런데 왜 자살했을까.
그는 건강을 잃었다. 아프리카에서 두 번에 걸친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62세가 되자 건강이 악화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했으며 기억력도 급속히 떨어졌고, 특히 성기능이 마비되고 손이 불편해 글을 쓸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크게 비관했었다. 인간은 운명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운명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으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도 운명에 도전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결국 그는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그의 인생관을 몸으로 실현해 보인 셈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죽음을 찾아감으로써 운명에 도전한 것이다. 돈 있고 명예 있으면 뭘 하나. 건강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새해에 헤밍웨이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이철 주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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