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키 웨스트의 석양

2003-12-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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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팝니다 -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

12월 말 바닷가에 나가 수평선으로 넘어가는 석양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센티멘털해지게 마련이다. 한해가 또 가는구나. 나이는 먹어 가는데 쌓아 놓은 것은 없고… 삶이란 무엇인가.

어느 방향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등등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커피나 와인 한잔 마시는 기분은 상상만 해도 낭만적이다. 가슴이 후련하도록 탁 트인 바다와 석양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없을까.
플로리다의 키 웨스트가 바로 그런 곳이다.


키 웨스트의 석양축제(Sunset Celebration)는 관광명물일 정도로 잘 알려져 있으며 1년 365일 동안 내내 펼쳐지지만 그 중에서도 한해가 지는 12월 말의 축제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 석양축제가 열리는 곳은 힐튼호텔 앞에 있는 멀로리 광장으로 매일 해지기 2시간 전부터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광장에는 고급 상가와 레스토랑이 줄을 이었지만 잡상인과 화가, 거리 음악가, 마술사, 서커스 팀 등도 등장해 보기 좋은 조화를 이룬다. 또 관광객들이 음악에 맞춰 댄스를 하기도 한다.

키 웨스트(Key West)의 석양이 다른 곳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수평선에 엷은 구름이 항상 깔려 석양이 유난히 붉어 보이는 효과를 내는 데다 멀로리 광장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설과 레스토랑, 샤핑가를 갖추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키 웨스트’하면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테네시 윌리엄스가 살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해적선과 난파선 인양 중심지로 유명하다. 키 웨스트 부근에는 작은 섬이 많기 때문에 해적선이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데 안성맞춤이며 남미와 유럽 상선이 미서부를 가려면 이곳을 통과해야 됐었다. 1700년대에는 키 웨스트가 해적 섬의 대명사였으나 미 해군이 해적 소탕작전을 벌인 이후로는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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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에는 키 웨스트가 난파선 인양의 중심지로 등장해 난파선의 물건들을 건져서 파는 비즈니스가 성업을 이루었으며 건달들이 돈벌기 좋은 곳으로 얼굴이 바뀌었다. 키 웨스트는 바람과 파도가 심해 한때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난파선이 생겨났으며 상선이 침몰하면 주민들이 보트를 타고 우르르 몰려가 바다에서 귀중품 건지는 것이 키 웨스트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었다. 요즘은 키 웨스트가 무엇으로 유명한가 하면 쿠바 피난민 보트다.

TV 뉴스에서 쿠바인들이 목숨을 걸고 그룹으로 탈출한 후 해상에서 미국 경비정과 입국을 둘러싸고 희비극을 벌이는 현장이 바로 키 웨스트 앞 바다다. 키 웨스트는 마이애미에서 100마일, 쿠바에서 90마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쿠바가 더 가까운 셈이다.

키 웨스트는 마이애미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다. 1번 하이웨이를 타고 내려가면 플로리다 키스라는 1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가 나오는데 그 끝이 키 웨스트다. 플랜테이션 키, 어퍼 키, 로워 키, 크래서 키, 닥 키, 바하이아 혼다 키, 보카치카 키 등 마지막 이름이 모두 ‘키’로 끝난다. 키 웨스트는 ‘키’씨 성을 가진 섬들 중 가장 크고 번화한 섬이며 플로리다 키스의 맏형인 셈이다.

기자가 키 웨스트를 취재하는 동안 별일이네하고 느꼈던 것은 거리에서 흑인과 동양인을 한사람도 못 본 사실이다. 모든 것에 카리브해 냄새가 물씬한데 사람들은 백인 일색이다.

아름다운 석양 때문에 관광객이 몰려드는 미 최남단의 섬 ‘키 웨스트’-지는 한해를 보내며 수평선 저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멀로리 광장의 석양축제는 12월의 관광 압권임에 틀림없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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