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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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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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9.11 테러로 그동안 일반 출입이 폐쇄됐던 자유의 여신상이 2004년부터 다시 공개된다.

뉴욕시는 공원관리재단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사와 공동으로 자유 여인상 전국 홍보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고객이 카드를 한번 사용할 때마다 1센트씩 여신상 관리기금에 기부하며 마틴 스코세이즈 영화감독을 기용하여 다큐영화를 제작하여 1월15일 케이블 히스토리 채널(Cable TV History Channeel)을 통하여 방영하며 100달러 이상을 기부하는 사람에게는 이 비디오를 선물한다고 한다.


9.11사태 이후 연방 정부는 200만달러를 지출해 부두에 금속 탐지기와 X-Ray 투시기를 설치 하였으며 국립공원 경찰과 사설 경비원도 증원되었다. 이번에 500만달러의 기금으로 비상 탈출구 증설 등 안전 대책이 마련된다
우리 흔히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하는 이 동상은 ‘미국인의 영원한 여인’ ‘이민자의 따뜻한 어머니의 모습’(당시는 비행기 여행이 아니고 기선을 통한 여행이라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처음 마주 치는 곳 이었기 때문에), 또는 ‘미국의 자유를 지키는 파수꾼’ 등의 이름이 붙어있다.

좌대부터 높이 92m, 225톤의 당시 세계 최대의 조형물로 1886년에 건립되었다. 1865년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의회 중심의 ‘대통령 국가’를 흠모하던 프랑스의 정치가 에드아르드 라불레는 왕정 정치에서 공화제로 바뀌는 과도기에 자리를 잡지 못한 공화제 정착을 위하여, 그리고 미국의 독립 100주년 기념을 축하 가기 위하여 미국의 승리와 자유를 위한 자유의 동상을 기증하기로 하였다.

당시 나폴레옹 3세의 불편한 심기를 무릎쓰고 조각가 바르톨비 오귀스트에게 동상 제작을 의뢰였다. 조각가 오귀스트는 조각의 컨셉을 잡기 위해 미국을 처음 방문하고 미국 대륙의 광활함에 압도되어 몸체만 40m의 거상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어머니를 모델로 세계 7개 대륙과 바다를 상징하는 왕과, 노예 해방을 뜻하는 발 아래의 쇠사슬, 자유의 상징인 독립 선언서와 승리의 상징인 횃불을, 그리고 유태계 러시아 시인 엔마 라자로가 1883년 발표한 ‘새로운 거인’이라는 시를 삽입했다. 소금 바다를 염두에 두고 부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구리를 주물로 하고 여러 개의 조각을 망치로 두들겨 제작, 조립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지미 김<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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