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재철 목사의 짧은 글 긴 여운

2003-12-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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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슈리트(1 Schritt)

통독 이전 베를린은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에 의해 동서로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그 장벽 한가운데 동서로 통하는 검문소가 있었는데, 미군 관할의 서베를린 쪽 검문소의 공식 명칭은 ‘체크포인트 찰리’였습니다. 통독 이후 동쪽 검문소는 철거되었지만, ‘체크포인트 찰리’는 자유의 상징으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근처 기념관에는, 동독 시민들이 자유를 찾아 죽음의 장벽을 넘기 위해 벌였던 사투가 사진과 기록 필름 그리고 문자로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어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제 시선을 끄는 포스터가 있었습니다. 처절한 사진이나 자극적인 구호와는 거리가 먼 그 포스터엔 단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을 뿐입니다.

Tokyo(동경) 8,913㎞
Peking(북경) 7,699㎞
Moskau(모스코바) 1,605㎞
Warshau(바르샤바) 520㎞
Berlin(베를린) 1 Schritt(아인 슈리트: 한 발자국)


겨우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그 짧은 거리가 지구 반대편 동경보다 더 멀기만 했던, 당시의 비극적 분단 상황을 호소하는 더 없이 좋은 포스터였습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한 발자국마저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곁에, 아니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서베를린 사람들은 가로막힌 장벽으로 인해 한 걸음에 불과한 동베를린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지만,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깨닫지 못하여 주님과 담을 쌓고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2003년 11월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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