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기억의 창

2003-12-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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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LA지구촌 교회)

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로 성큼 한 발을 내디뎠다. 영어의 표현에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진다’(Time slips through my fingers)라는 말이 있는데 마치 물이 손가락 사이로 흐르듯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신문지면에 감사절 후의 샤핑 대란을 치르는 기사가 실렸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너도나도 세일 기간에 선물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선물도 중요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나온 날들을 기억하며 우리 자신을 향한 돌아봄이 또한 필요한 것 같다.

크리스천 작가인 켄 가이어는 ‘영혼의 창’에서, 우리는 세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 귀에 들리는 대로 듣는 것 이상으로 그 속에 감추어진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으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방식을 ‘영혼의 창’이라고 불렀다. 기억에 있어서도 과거를 단지 일련의 사건만을 떠올리는 ‘거울’(mirror)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이면을 살피는 ‘창’(window)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싶다. 이런 방식으로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을 ‘기억의 창’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이런 의미에서 얼마 전부터 내 자신에게도 지난날들을 ‘기억의 창’으로 돌아보는 법을 적용해 보고 있다.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내 자신을 우울함이 아니라 애통함으로 되돌아보는 참으로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옥한흠 목사님이 쓰신 ‘빈 마음 가득한 행복’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묵상하며 내 자신이 얼마만큼 그분에게까지 자라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팔복에서 나오는 여덟 가지 내용은 곧 예수님 자신의 성품이며 동시에 예수님을 닮아 가는 한 사람의 온전한 성품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주님의 성품으로 채워지기까지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한 아득한 내 모습을 보며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팔복 중 두 번째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의 말씀을 묵상하는 중, 내 자신을 향한 답답함이 부정적인 우울함이 아니라 긍정적인 애통함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애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표준은 다른 사람,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지나온 과거 속으로 주님과 함께 기억의 순례를 떠나보자. 언제 생각해도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는 행복했던 순간, 그리고 눈물로 아파했던 가슴 저리는 순간들까지도 기억해 보자. 그 모든 일들은 우리의 삶을 풍성케 하시기 위해, 때로는 아픔과 고난조차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기억의 창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햇빛만 쏟아지는 곳은 사막이 된다’는 아랍의 속담처럼 우리에게서 눈물이 메말라 버린다면 우리 인생은 아마 무미건조한 사막과도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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