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사·감사·감사해요

2003-11-28 (금)
크게 작게
김선화(샌 페드로 한인교회)

이맘때가 되면 버릇처럼 살아온 한 해를 돌아본다. 그 동안 너무 상식적인 것들만 챙기며 살아왔다는 자책과 함께 무심히 여겨온 일상 속에 참으로 많은 감사의 조건이 있음을 깨닫는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부신 파란하늘, 온갖 바람을 품에 안고 넉넉하게 흔들리는 싱그러운 나무들, 끝간데 없이 펼쳐진 광활한 바다, 길가에 동그마니 앉아 앙증맞은 꽃을 피워내는 가냘픈 풀 한 포기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참 감사하다.
착각도 때가 있다고 우겨대며 쪼금은 뽐내던 한 미모는 꿈처럼 아련하고, 넉넉한 아줌마로 변신 성공한 덕분에 어디를 가든지 ‘사모님이시죠?’ ‘참 편안해 보여서 좋아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들으면서도 절대 서글프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럴 시간 있으면 책을 한 장 더 보겠다’고 억지를 부리지만 실상은 게을러서 화장하고 꾸미는 일을 못하는데 어쩌다 흰 살결을 타고나 맨 얼굴에 입술만 칠해도 그럴듯해 보인다니 감사한 일이다.
오이만 빼고는 못 먹고 안 먹는 것이 없는 식성이 멋쩍어서 ‘난 왜 이럴까? 예전엔 안 그랬는데...’라고 어설픈 변명을 할라치면 먹고 싶어도 못 먹을 때가 올 테니 먹힐 때 실컷 먹어라고 진리로 위로하시는 노인들이 옆에 계시니 이 또한 감사하다.
길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울고 웃을 온갖 일들을 겪어보았기에 ‘삶은 계란이다’ ‘삶은 라면이다’라고 외치는 이들을 동지라 부르면서도 여전히 괜찮은 세상을 꿈꾸는 맹물이 되어버린 것이 감사하다.
쉽지 않은 아픔을 가슴에 담고있을 때에도 우리교회 양반 권사님께서 질색하시는 호탕한 웃음을 웃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된 것이 감사하다.
기도하는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어 감사하고, 언제나 좋은 친구, 멋진 딸, 든든한 동역자로 곁에 있어 주는 천사표 죠앤, 그리고 태어나 20년이 지난 이제까지도 범사에 내 인생의 선생과 기쁨의 근원이 되어주는 근사한 아들을 인하여 감사한다.
’남편을 사랑하는 모임’ 일명 ‘남사모’를 만들어 잔소리하는 아내에게 대처하는 법을 연구해야겠다고 말하지만 남몰래 생선가시를 발라 아내의 접시에 놓아주고, 필요할 때마다 ‘난 당신 없으면 하루도 못산다’고 말해주고 설교한대로 한결같이 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남편으로 인해 감사한다.
내게 주신 작은 교회, 변함없는 위로와 사랑을 나눠주는 형제와 동역자들과 성도들, 선한 이웃들, 자칫 무디어진 걸음을 가시가 되어 깨우쳐주는 이들... 늘 감사하지만 부족함을 느낀다. 그야말로 바다를 먹물 삼고 하늘을 두루 마리 삼는다해도 넘치는 감사를 어찌 다 쓸 수 있을까.
그럼에도 꼭 한 가지만 더하고 싶다. 올 한해도 내가 하고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내게 꼭 필요한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 당신의 자녀를 돌보시는 일에 절대 실수가 없는 분임을 알고 믿기에 참으로 감사·감사·감사하다.
내 사랑하는 이들, 이즈음에 한 번쯤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면 결국 은혜로 살아온 한 해였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감사함으로써 더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