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이 인정하는 경건한 자들은?

2003-11-25 (화)
크게 작게
한때 어느 교단은 내면으로는 물론, 외모로도 경건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성경을 들고 다닐 때도 그냥 들고 다녀서는 안되고 반드시 가슴에 품어야 했다. 걸음도 종종걸음해서는 안되고 양반걸음이라는 팔자걸음을 걸어야 했다. 예배당 안에서는 박수를 친다든가 하는 것들은 경건한 신앙인이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라고 못박았다. 그게 경건일까?

어느 장로님이 교회를 다니다가 경건한 교회를 찾아 나섰다.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의 단점들을 노트에 기록하며 여긴 아니야!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자연히 목회자와의 관계가 불편하고 교인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그는 20여 년 동안 108번이나 옮겨 다녔지만 참다운 교회를 찾지 못한 채 그만 세상을 떴다. 장례식 때 진정 함께 할 교우들도 없자, 108번째 교회의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고인의 백팔번뇌가 끝났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게 경건일까? 많은 교우들이 세상과 담을 쌓고, 술 담배 안하는 것이 경건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경건일까?

예수님 만큼 경건하신 분이 있을까.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결하고 흠이 없는 경건 생활을 하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그는 먹기를 탐하는 ‘먹보’(Glutton)에다가, 포도주를 즐기는 ‘술고래’(Drunkard)이며, 세리와 창녀들의 ‘동료’(Companion)(마11:19)라고 함으로 예수님의 경건하지 못함을 비난했다. 바리새인이 공격하느라 과장했지만 예수님은 먹고 마심을 인정하시며, 지혜는 지혜로운 행동에 의해서 인정받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보시기에 경건의 의미와 기준이 틀리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예수님의 경건생활을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서 피부로 보고 느낀 사람, 친동생 야고보는 경건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바울은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경건을 연습하라’ 한다.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의 첫째 기준이 사회봉사이다. 이 경건을 연습하자.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사회봉사 없는 교인은 주님 앞에서 정결하고 흠없는 경건에서 먼 사람들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소위 교회 안에서만 경건하다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경건이 떨어진다.

하나님 앞에 경건이 떨어지는 사람은 이상하게 세상이 지탄한다. 경건의 정의와 기준을 성경적으로 바로 세우자! 아, QT(경건의 시간)를 갖는 이들이여! 이 땅에서 정말 경건하다는 사람들은, 그래서 하나님이 정결하고 흠 없다고 인정하시는 첫째의 경건한 사람들은, 바로 사회봉사하는 사람들이다. (www.cemkla.org)

이효삼목사 (에임스한인교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