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가 안네 프랑크를 밀고 했는가

2003-11-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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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만에 밝혀지는 사건의 윤곽, 유력한 용의자는 여자 청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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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는 여왕의 궁전보다 더 유명한 건물이 하나 있다. 프린젠그라트 263번지의 낡은 4층 창고 빌딩. 바로 안네 프랑크가 숨어있던 건물이다. 1950년대 초엔 도시계획에 해당돼 하마터면 헐릴 뻔했으나 유대인 단체들의 항의로 구제되었다. 지금은 안네 프랑크 박물관이 되었으며 암스테르담의 관광명소로 시당국이 예산까지 할당하여 보존하고 있다.


원래 이 건물은 안네의 아버지의 조미료회사 창고였으나 유대인 검거선풍이 일자 안네의 가족이 시내 아파트에서 빠져나와 이 곳에 숨게 되었다. 안네의 가족 4명 외에도 반펠스라는 또 다른 유대인 가족 4명도 함께 지냈다. ‘안네의 일기’는 자신이 42년 6월14일터 44년 8월4일까지 이 건물 다락방에서 지낸 초긴장의 생활을 일기로 적은 것이며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실감나게 그려 홀로코스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누가 안네의 가족이 다락방에 숨어 있다는 것을 게슈타포에게 밀고했는가. 대략은 윤곽이 드러났다. ‘안네의 일기’가 출판되자 암스테르담 경찰은 이 사건을 재 수사했으며 수사과정에서 창고의 청소 일을 맡았던 리나 하르토크라는 여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으나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때에 이 여자가 병사하는 바람에 영영 미궁에 파묻히게 되었다.

리나가 밀고자로 의심받는 이유는 이 여인도 병역을 기피한 아들을 집에 숨겨 놓고 있었는데 안네의 가족이 잡히는 날엔 공장 종업원들까지 조사 받을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나의 아들도 발각되어 처벌받는다며 전전긍긍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찰에 밀고한 전화 목소리가 여자라는 것이 후일 밝혀졌다.

안네의 가족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아버지만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막판에 나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람들을 소개시켰는데 안네와 언니 마곳은 독일의 벨겐벨젠 수용소로 옮겨져 병사했으며 안네의 아버지는 중환자로 아우슈비츠에 남아 개스처형을 기다린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안네의 어머니는 이에 앞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안네의 일기’는 그의 아버지가 출판했지만 처음부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아니다. 55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공연되고, 58년 조지 스티븐스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3개 부문 아카데미상을 타면서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으며 여기에서 들어온 수입으로 안네 프랑크 박물관이 세워졌다.

’안네의 일기’ 원본 중 324P에서부터 327P에 이르는 3페이지는 아버지가 감춘 것이 후일 밝혀졌다. 여기에는 딸의 입장에서 본 부모가 그려져 있었는데 안네는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충실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 성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안네는 천사 같은 이미지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말이 많고 반항적인 성격이었다. 아버지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여성과 재혼한 후 평생을 인종편견 없애기 운동에 바쳤으며 1980년 사망했다. 안네 프랑크 박물관에 들어서면 왼쪽 벽에 다음과 같은 안네의 일기 내용이 적혀있다.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은 끝날 것이다. 그때는 우리도 유대인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안네는 나의 소원은 작가가 되는 것이며 유명해지고 싶다고 일기에 적고 있다. 안네는 죽었지만 그의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그녀가 살아있다면 올해 74세의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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