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수님을 보게 하는 사람

2003-11-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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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삼 (세계로교회 담임목사)

목사인 저에게 스스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매사를 ‘주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성도를 대할 때는 물론, 일상적인 일을 할 때도 ‘주께 하듯’ 정성스럽게 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생활에서 맥없는 사람들로 보이는 이유는 ‘주께 하듯’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렇게나 말하고, 무례하게 행동합니다.

매사를 ‘주께 하듯’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다면, 미움은 쉽게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마구 대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주님을 본다면, ‘주께 하듯’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곰곰 살펴보니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임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들의 모습 속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야곱이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때 그의 마음에는 형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지은 잘못 때문에 생긴 불안입니다. 불안이 그의 마음을 엄습할 때 아마도 형 ‘에서’의 얼굴은 자기를 죽이려하는 대적자의 사나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형을 만나보니 자기를 반기는 형의 얼굴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았다고 합니다. 야곱의 마음에 주님을 대하듯 형을 대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형의 얼굴에서 주님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생의 연륜이 깊은 성도들 사이의 관심 중 하나가 어떻게 늙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며,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반가운 존재로 남는가 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분 권사님은 나이가 들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더욱 귀중한 존재로 존중을 받는 분이 계십니다. 기도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은 십 수년 전 같은 노인 아파트에 사는 히스패닉 이웃을 돕다가 다친 허리 때문에 잘 걷지 못하여 주일 예배에도 일 년에 몇 번밖에 참석하시지 못하지만, 삶의 대부분을 시간을 기도하고, 테이프로 말씀을 듣고, 성경을 암송하는데 보냅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가면 살아 계신 예수님이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언젠가 제가 권사님 댁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당신은 단단한 음식을 드시지 못하면서도 막내아들 같은 목사가 온다고 진수 성찬을 차려 놓으셨습니다. 정성 들여 닦은 은수저도 다소곳이 밥상에 올려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는 순간 목사님을 보니 주님을 보는 것 같아요하고 살갑게 맞아 주십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속에서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정말 내 얼굴에서 예수님이 보일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나 제 얼굴은 여전히 지치고, 피곤한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잠시의 생각 끝에 답을 찾았습니다. 권사님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든든히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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