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불과 등산

2003-11-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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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재앙인지 자연의 순리인지는 몰라도 남가주 산악지역에서는 산불이 많이 난다. 매년 인디안 서머라고 부르는 10월과 11월이 되어 기온이 10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2~3일만 계속되고 모하비 사막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샌타애나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면 어디 어디에 산불이 났다는 뉴스가 꼭 저녁 브라운관에 등장한다.

산불 화인이 방화범의 소행이라는 추측도 해보고 수사와 경계를 강화해 보지만 대부분의 남가주 산악지역에서 동시다발로 불이 생기는 것을 보면 화인이 대체적으로 자연발화라는 설명이 더욱 더 설득력을 지니게 한다.

마른 풀잎이나 숲 속에 유리조각 같은 투명체가 빛을 발하여 마치 볼록렌즈와 같은 역할을 해서 초점에 불이 생기고 때마침 솔솔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이 부채질을 하여 불길을 일으키게 한다는 이론인데 화인이야 어떻든 남가주가 생긴 이래 줄곧 건조한 늦가을에 산불이 나서 숲과 나무를 모두 태우고 그 재가 거름이 되어 다시 이듬해에 새로운 나무와 숲이 탄생하는 순환은 태초부터 계속되어 왔다.


산불을 방지해 보려는 노력 또한 정부 차원에서 대단하다. 산악지대에는 가능한 불길이 시작되지 않게 침엽수로 식목하고 여러 겹의 방화도로를 구축하여 불이 났을 경우에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좋게 한다. 불이 많이 나는 지역에는 아예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해 버린다. 가령 아주사 마을 위쪽의 크리스탈 레이크만 해도 지난해에 있었던 큰 화재 이후 일반인의 입산을 금지해 버렸다.

이처럼 산불을 막아보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불은 예외 없이 매년 발생한다. 일단 불이 나면 가파른 산세에다 100피트 높이를 치솟는 불길과 프리웨이를 가로질러 번져 가는 산불의 화력 앞에 사람의 손은 너무나 속수무책이다.

큰 산불이 날 적마다 진화된 후에도 재발 예방차원에서 한참 해당지역을 폐쇄해 버린다. 입산하는 입구 요로 요로에 게이트를 쳐놓고 통행을 막는다. 대부분 느슨하게 쳐있는 형식상의 게이트이지만 게이트을 제치고 몰래 입산했다가 적발되면 상당한 벌금형을 면할 수 없다.

지금 현재 닫혀 있는 남가주 4개의 국유림은 언제 일반에게 공개될지는 아직 예측 불능이지만 지난해의 경우 산불 지역은 3개월 동안 폐쇄되어 있었다. 사태가 요즘 같이 심각하면 매주 산행을 일과처럼 생각하는 산꾼들에게는 꼼짝없이 한동안 갈 곳을 잃은 셈이 된다. 샌개브리엘 산 속을 본거지 삼아 정규적으로 산행을 하는 토요산악회 역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산행코스의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강태화 <토요산악회장·909-628-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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