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故정춘수 목사님께

2003-10-29 (수)
크게 작게
이성현 (글렌데일 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목사님, 그동안 안녕하셨죠? 사실 제가 목사님께 안녕하셨냐고 묻는 것이 좀 쑥스럽군요. 하늘 나라에 계신 목사님께서는 물론 안녕하실 것이고 오히려 목사님께서 제게 묻고 싶은 질문이겠군요.

정 목사님, 며칠전에 목사님의 딸, 한샘이의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웨스트 포인트 유니품을 입은 한샘의 의젓한 모습을 보니 목사님 생각이 더 나더군요. 한샘이가 벌써 웨스트 포인트 4학년이며, 이번에 4,000여명 재학생 중 뛰어난 사관생도로 구성된 최고 여단의 부단장으로 선발되었답니다. 3학년 때는 웨스트 포인트에서 8명의 최우수 사단생도로 선발돼 특무상사가 되었고, 지난 여름에는 1,300여명이 참석하는 신입생 서머 캠프를 총지휘하는 캠프 단장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답니다. 한샘이가 13살 때는 오빠, 한뜻과 함께 ‘조국 광복 50주년 대축제 자전거 대륙 횡단팀’의 최연소자로 LA에서 뉴욕까지 자전거로 주파했던 것도 아시죠. 목사님께서 늘 바라셨던 한반도의 통일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서 두 남매가 자전거로 대륙을 횡단했을 때부터 심상치가 않았는데, 이렇게 잘 컸네요.


한샘이의 기사를 읽으면서 목사님께서 위암 수술 받으시고 저희 교회에 오셔서 설교하시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얼굴은 많이 야위시고, 체중 또한 몹시 줄어 양복이 커 보였지만,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빤짝이는 목사님의 자상하시면서도 투지의 눈빛은 아직도 제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그 날 목사님은 본인의 투병 생활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내 안에 있는 암 세포도 내 몸의 한 부분이기에 그것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품으려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사순절 수요예배에 오셔서 성만찬 예식을 집례하시면서 포도즙에 남한에서 나온 인삼차 가루와 북한에서 나온 인삼차 가루를 섞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고, 원수 되었던 사람들이 화해하듯이, 우리들의 조국인 남한과 북한도 주님의 보혈로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정 목사님, 이번 주일이 성도추모주일(All Saints Sunday) 입니다. 이번 성도추모주일을 맞이하면서 한샘이의 기사를 통해 정 목사님께서 제게 남긴 사랑과 교훈의 흔적들을 되새겨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란 책에서 자신의 죽음을 앞둔 Morris Schwartz라는 교수가 이런 말을 합니다.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정 목사님은 지금 우리와 같이 계시지는 않지만, 목사님의 목회 철학과 삶의 가치관과 통일의 비전은 이렇게 후배의 가슴속에, 아들과 딸의 삶 속에서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확인합니다.

정 목사님, 사모님께서 한샘이 낙하산 훈련에 참여하셨다가 사모님도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셨던 것 보시면서 얼마나 걱정하셨나요? 사모님도 목사님처럼 강하신 분이세요. 목사님, 목사님 가족 모두를 존경합니다.

목사님을 사랑하는 후배 이성현목사 올림.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