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블렌던이 생쥐를 만났을 때

2003-09-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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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호 목사(나눔선교회)

세상에는 참 특이한 재주를 갖은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공부는 쪼끔 못해도, 힘은 별로 세지 않아도, 이상하고 신기한 재주로 가끔 선교회의 지겨운 분위기를 말끔히 날려주는 아주 아주 재미있는 한 친구를 소개하려고 한다.
레이건은 17세이다. 외모는 적당히 잘 생긴 그리고 공부는 별로 흥미가 없으며, 성경공부 시간에는 주로 잠으로 시간을 때우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선교회에 상담을 왔을 땐 아등바등 빠져나갈 궁리하여 기어코 빠져나갔지만, 결국 경찰에 연행되어 다시 선교회를 찾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이 아이를 솔직히 처음에는 약간 모자라지 않는가 라고 의심도 하고, 혹시 머리가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선교회에서 하는 아주 보편적인 프로그램조차도 도무지 따라하지를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건 아침에 일어나라 해도 제시간에 일어나기를 하나, 옷은 여기 훌렁, 저기 훌렁, 성경공부 시간에는 심드렁하니 눈을 감지도 않은 채 잠자기 일쑤고, 얼마나 주위가 산만한지 앉았다 일어났다, 저쪽 갔다 이쪽 갔다, 놀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자아이의 코에 두 손가락을 끼우고 선교회 이곳 저곳을 끌고 다니지를 않나, 마음에 안 드는 형들에게 힘으론 안되니 신체 여기저기를 입으로 빨아 시뻘건 자국을 만들어 놓고, 남자 전도사님이 잠을 자고 있으면 얼굴에 물을 한바가지 확 뿌리고 도망치곤 하는 정말 정말 말썽꾸러기 중의 말썽꾸러기인 이 아이에게 몇 가지 재주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아이는 물건을 귀신 같이 잘 찾는다. 한번은 선교회 내 방송을 위하여 달아놓은 확성기를 누군가 낮잠에 방해가 된다고 몰래 뜯어서 어딘가에 숨겨 놓았다. 이것을 이 녀석이 45갤런 검은 쓰레기 봉지를 뒤집어쓰곤 전쟁에 나가는 듯한 비장한 얼굴로 쓰레기더미 속으로 쑥 들어가서 한 10여분을 뒤집더니 확성기를 양손에 들고는 승전한 군인처럼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의기 양양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뿐인가! 땅을 맨손으로 퍽퍽 판다는 것이다. 한번은 선교회 캠프를 해변으로 갔는데 순식간에 다리를 벌리고 엉거주춤 반쯤 주저앉아선, 멍멍이처럼 두 손을 앞에서 뒤로 팍팍 쳤더니 모래가 완전히 파헤쳐서 깊은 웅덩이를 순식간에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또 물고기에게 인공호흡을 했는지, 죽은 듯한 고기를 살려내기도 하고, 참으로 희한한 일들을 꽤 많이 일으키곤 한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재주는 바로 쥐를 잡는 것이다. 이 녀석은 어떻게 어디에 쥐가 있는지 아는지, 물을 이곳 저곳 뿌린 다음 그 곳에서 기어 나오는 쥐를 째려본다. 그러면 희한하게도 쥐들이 꼼짝 못하고 앞발을 오그린 채로 그냥 얼어버린다는 사실이다. 그저 이 녀석이 쳐다만 보아도 쥐가 바들바들 떨며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그러면 그 녀석은 그냥 다가가서 머리를 획 낚아채거나, 꼬리를 훌쩍 들어 마구 돌린다. 그래서 잡은 쥐만 약 300마리 정도는 훨씬 넘을 것이다.
그래 선교회에 쥐꼬리라도 보일라치면, 블렌던 쥐잡아라라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신나게 수 십 마리의 쥐를 잡아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녀석에게 넌 공부는 못하지만 잘하는 것이 참 많이 있구나, 다른 아이들이 못하는 것을 네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네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너는 더 잘하는 것이 있을 거다. 단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인 것 같구나
이러한 칭찬이 먹혔는지 그 녀석이 언젠가부터 성경공부 시간에 잠을 자지 않는 것이었고, QT, 성경 쓰기를 빼 먹지 않고 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공부까지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은 칭찬에 약하다는 사실 또 한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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