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슨 옷을 입을까?

2003-09-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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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점점 예뻐지네요 머리는 뒤로 질끈 동여매고, 화장은 로션과 연분홍 루즈를 살짝 바르면 땡. 내게 달라진 것이라곤 옷-하늘색 투피스를 입은 것뿐이었다. 교인의 눈에는 정장을 한 사모의 옷이 그날 따라 새로워 보였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몇 년 동안 친정어머니의 여름옷을 줄여서 입었기 때문에 좀 칙칙하고 노티가 나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나는 비교적 옷 타령은 안 하는 편이었다. 지금까지 늘 언니들의 옷을 물려받아 입는 일에 익숙해져 있어서 새로 해달라거나 졸라본 적도 없다. 옷 사는데 드는 돈이 가장 아깝기도 하여 야드 세일에서 몇 가지 건져 입는 것으로도 족했다. 오죽하면 남편이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가장 옷을 못 입는 여성 3명중에 한사람으로 꼽혔을까. 나는 언제부터 여자이기를 포기한 것일까? 그때만 해도 30대였으니까 그런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고 자신이 만만했던가 보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어느 날 외출을 하려는데 갑자기 남편이 더 근사해 보이질 않는가. 안 그래도 팽팽한 근육에 머리만 자르고 와도 아들의 형님 같다는 소리를 듣는 남편에 비해 나의 모습은 왠지 초라해 보였다. 이런 나에게 남편은 당신 이젠 옷을 좀 밝게 입어. 나이 들수록 원색계통을 입는다잖아 가뜩이나 남편이 나의 연상인데도 나를 연상으로 보는 예가 있기 때문에 나는 더욱 예민해졌다. 종일 마음이 뒤숭숭. 다음날 통 연락을 안 하던 한국에 전화를 했다. 언니, 저예요. 여차여차 하고, 야만야만 해서...여름이 가기 전에 싸구려도 좋으니까 시원하고 밝은 색의 정장을 좀... 웬 바람이며 무슨 용기였을까?


나를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다리를 놓았던 둘째 올케라 그런지 재까닥 소포가 왔다. 그것도 한두 벌도 아닌 바지 정장까지, 두 차례나.... 우송료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너무 감격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고 멍-해지면서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슬그머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울 앞에서 이것저것 입어 보았다 왜 이렇게 폼이 안 날까? 당장 살부터 빼야겠네

아무리 여자는 옷이 날개라지만 옷으로 나이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그리고 어디까지 나를 커버할 수 있으며, 누구를 위해 옷을 입는가? 내가 꼭 옷으로 날개를 달아야 하나? 수십 가지 생각이 스쳐 가면서 주일아침이 되면 나도 모르게 부랴부랴, 허둥지둥 내 손이 가는 옷은 여전히 내가 입던 그 편한 옷이 아니던가.

남편이 내게 예쁘다는 소리는 한 번도 안 해도 당신은 그저 우아-해 그 소리가 더 고상하고 내게 어울리지 않는가. 나 스스로 자위해보며 나는 은은하고도 내 향이 있는, 나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입어야겠다.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듯이 내 마음을 다스리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옷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왜 나는 깜박한 것일까?

신혜원(새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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