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징기스칸은 위대했다

2003-09-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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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전속결 전술로 세계정복,
모든종교 받아들이고 동서문화 교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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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흥했나, 왜 망했나

징기스칸(사진)과 여자와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운명 지워져 있다. 징기스칸의 아버지 예수게이는 남의 약혼녀를 빼앗아 와 데리고 살았기 때문에 후일 상대방 부족으로부터 독살되는 비극을 당했다.


그 후로 징기스칸은 남이 자기에게 술을 따를 때 독이 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은잔으로 받아 마셨다.이것이 관습이 되어 몽골에서는 손님을 정중하게 대접할 때 은잔을 사용한다. 몽골에 가면 선물가게에 은 술잔이 많은 것도 이런 유래 때문이다.

또 징기스칸의 부인은 이웃 부족에게 납치된 후 강간당했으며 그래서 첫째 아들이 징기스칸의 핏줄이 아니라고 의심받게 된다. 이 사건은 후일 결국 왕위계승에까지 말썽이나 장남인 ‘주치’가 밀려나고 셋째인 ‘우구데이’가 후계자가 되는 파란만장을 겪는다. 고려를 정복한 왕이 바로 이 ‘우구데이’칸 이다. 몽골인들은 한국인을 만나면 “우리는 형제”라는 표현을 쓰는데 말은 않지만 자신들이 한때 고려를 속국으로 삼았기 때문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현지 한국 유학생들이 전한다. 이렇게 되면 ‘형제’라는 표현에서 자신들이 형이라는 뜻이 된다.

징기스칸은 일자무식이었다. 그의 군대도 10만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실패한 러시아를 그는 무릎 꿇게 했으며 중국, 인도, 페르샤, 터키, 발칸반도 제국까지 정복했으니(아들 대에서는 폴란드, 헝가리까지) 징기스칸은 불세출의 영웅임에 틀림없다. 그는 전술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인사에도 탁월한 재능을 지닌 지도자였다. 징기스칸의 사람 다루는 법은 오늘의 기업인들이 연구해 볼만한 과제다.

징기스칸은 철저히 능력위주의 인사를 했다. 귀족과 천민을 가리지 않고 능력만을 기준으로 지위를 부여했으며 그의 친척이라 해도 무공을 세우지 않으면 인정사정 없이 계급을 깎아 내렸다.

또 자기의 적이라 해도 인재로 생각되면 과감히 등용해 제베와 같은 명장을 발굴했고 몽골의 제갈공명으로 불린 야율초재 같은 인물을 재상으로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용서가 무엇인가를 아는 인간적인 관대함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적에게 강간당한 아내를 불문에 부치고 데리고 산 것과 강간에서 태어난 맏아들을 친아들로 공식 선포한 사실이다. 이 같은 처세는 오늘날에도 힘들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관용이었다.

그러나 징기스칸은 싸움터에서는 무자비했다. 항복하면 받아들였지만 저항하면 성내 모든 남녀노소를 살육하고 불을 질러 초토화시키는 잔인함을 보였다. 그의 전투비결은 속전속결이었다. 적의 예상보다 훨씬 앞질러 진격하는 군사이동을 통해 적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이 전술사에서도 유명한 ‘징기스칸 전법’이다.

그런데 몽골제국은 왜 망했을까.

너무 영토를 확장했기 때문이다. 영토가 지나치게 넓어져 다스릴 행정 능력이 없었다. 징기스칸의 아들들은 싸움만 잘했지 통치할 줄을 몰랐다. 그것은 마치 사업을 능력 이상으로 확장한 기업인이 경영 능력이 없어 망하는 원리와 똑같았다. 정복을 중지한 그 날부터 몽골제국은 기울기 시작했다.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에서 세계 정벌은 끝나 최전성기를 이루었으며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을 달렸다. “나는 싸운다. 고로 존재한다”가 몽골민족의 타고난 숙명이었다. 그리고 징기스칸이 세계 정복 때 보인 잔인성 때문에 타민족들이 몽골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여 후일 끊임없이 몽골족을 침공 학살하는 보복이 일어나게 된다. 징기스칸이 후손에 남긴 비극의 유산이다.

chullee@koreatimes.com


특집사진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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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이 재현한 징기스칸의 병사들. 이들은 육포와 같은 보르츠를 휴대식량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며칠이고 말위에서 자며 행군할 수 있도록 훈련 받았다. 병사 1인당 3필의 말이 주어졌으며 몽고말은 지구력이 강해 2일동안 장거리를 쉬지않과 달릴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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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인가 추상화인가. 아무도 징기스칸의 얼굴을 몰라 그의 초상화는 손자인 쿠빌라이칸 얼굴을 근거로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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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 국립오페라단. 이들의 다민족 복장은 몽골제국이 얼마나 넓은 땅을 지배했는가 보여주고 있다. 두루마기와 닮은 겉옷 ‘델’이 사회계급을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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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이 전쟁터에서 끌고 다녔던 막사를 그대로 모방한 ‘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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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몽골병사의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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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흐’로 불리우는 몽골씨름경기. 징기스칸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할때 칼로 죽이지 않고 씨름 경기를 열어 정적의 목을 꺽어 죽이는 방법을 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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