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의 이웃은?

2003-09-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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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유럽에서는 어느 동네를 막론하고 집 창틀마다 예쁜 꽃들(hanging flowers)이 매달려 있습니다. 집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 꽃들을 집주인이 정성스럽게 가꾸는 것은 집 밖의 사람들, 이를테면 이웃을 위해서입니다. 그곳의 집들이 한결같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단순히 집 모양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이처럼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집밖까지 여과 없이 배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곳 사회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있다면 이렇듯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입니다.
우리집 정면에 3층짜리 연립주택이 완공된 것은 작년이었습니다. 완공 허가가 나자 집주인은 집 뒤편 그러니까 우리집 쪽으로 베란다를 불법 증축, 좌우사방에 창틀을 세우고 그 공간을 창고로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불법창고의 유리가 온통 투명유리인지라, 그 안에 놓여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그 어지러운 잡동사니들이요, 하루에 몇 번씩 대문을 드나들 때에도 사정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남의 집 잡동사니들을 밤낮 시야에 가득 담고 산다는 것은 적잖은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만약 그 집주인이 불법창고의 창틀에 불투명유리를 끼웠다면 훨씬 더 답답했을 것이라고, 차라리 지금처럼 속이 들여다보이는 편이 훨씬 인간적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다시 생각을 더 적극적으로 바꾸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제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바로 그런 이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이웃은 대개의 경우, 전혀 이웃을 배려치 않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는 온갖 허물투성이인 우리 자신마저 온전히 품어 주신 주님의 넉넉한 마음을 이어받은 크리스천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
-2003년 8·9월 홍성사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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