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이프 인생 파이프 교회

2003-08-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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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재고라고 합니다. 재고가 쌓이고 있는 창고를 보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물도 고이면 썩고, 몸도 신진대사가 막히면 병이 듭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중요한 자원들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그것이 도리어 화의 근원이 됩니다.
인생에는 세 가지 중요한 자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과 지식과 지위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얻기 위해 많은 공을 들입니다. 이민자들이 돈을 얻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시간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코리아타운 플라자에서 사업을 하는 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분들은 대부분 돈에 미친 사람들 같아요.”
지식을 얻기 위한 유학생들의 수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렇게 얻어진 지식의 산물인 학위만 가지면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위에 대한 갈망 또한 절제하기 어려운 욕구입니다. 그래서 지위를 한 번 붙들면 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직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는 지난 주 감자탕교회로 소문난 서울광염교회 조현삼 목사님과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 목사님의 교회관과 인생관은 ‘파이프 교회’이고 ‘파이프 인생’이었습니다. 저는 비교적 오랫동안 학교에 있었습니다. 공부하던 긴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제가 배우고 깨우친 것을 값없이 유통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 목사님과 교제하면서 교회는 ‘생명력’을 흘려보내는 그 한가지 일에 집중하여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파이프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자원, 곧 돈, 지식, 지위를 흘려보내는 인생입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나의 창고 쌓아놓고 자물쇠로 잠그는 인생이 아니라, 쉼 없이 흘려보내는 삶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재물에 대한 가르침을 깊게 연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배운 진리는 하나님은 돈을 목적 없이 쌓아두는 것을 제일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타락의 온상이 되기 때문입니다(눅 12:15-21; 잠 10:22). 지식은 유통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유통되는 지식은 많은 것을 생산해 냅니다. 지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위는 권한을 통해 섬김으로 지위를 부여한 사람들과 공유하게 됩니다.
파이프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자원들을 흘려보내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자원은 무한하기 때문에 교회는 쉼 없이 이 자원을 세상을 향하여 흘려야 합니다. 파이프 교회는 파이프 인생을 사는 성도들을 통해서 실현됩니다. 파이프 인생은 끊임없이 자기에게 주신을 자원을 흘려보냄으로 항상 풍족하지만 또한 항상 모자랍니다. 창고 인생은 끊임이 쌓아두지만 결국 남는 것은 재고뿐입니다.

한 규 삼
(세계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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