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짧은 글 긴 여운 - 떠나 보내기

2003-08-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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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훈이야, 네가 노트북을 가지고 가지 않았으니 아빠의 이 메일을 언제 볼지 모르겠구나. 그게 언제든 상관없이 아빤 네게 이 글을 지금 쓰고 싶어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오늘 아침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 네가 준 편지, 끝내 아빠의 눈시울이 붉어졌지. 너의 그 따뜻한 마음이 온통 아빠에게 전이되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네가 없는, 그래서 텅 빈 듯한 집으로 들어왔을 때, 왜 그리도 마음이 허전하던지! 아, 이렇게 떠나 버렸구나! 18년 동안 기쁨과 긍지와 행복을 주던 사랑하는 승훈이가 이렇게 가 버렸구나-이런 생각과 더불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단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내게 말할 수 없는 소망과 믿음을 쏟아 부어 주셨단다. 지금까지는 아빠와 엄마에 의해 네가 양육되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직접 아름답게 빚어져 갈 것이란 소망과 믿음 말이다. 비록 가족과 떨어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넌 이제 하나님의 승훈이로 멋지게 농익어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랑하는 아들아! 낭만과 꿈과 소망과 자기훈련이 넘치는 멋진 대학생활을 즐기거라. 그리고 잊지 말거라. 아빠 엄마에겐, 네가 그처럼 늠름하게 네 길을 홀로 떠나는 것보다 더 큰 효도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야. 비록 몸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그러나 아빠 엄마가 언제나 네 곁에 있다는 것 알지? 도움이 필요하면 하시라도 연락하거라.
2003년 2월 23일 오후 3시 41분
널 사랑하는 아빠가

올해 한동대에 입학한 큰아이가 지난 2월 23일 포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학업을 마치고 군복무를 한 후엔 결혼을 하고……, 이렇게 생각하니 승훈이는 이미 자기인생을 찾아 출가한 셈이었습니다. 단순한 이별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날 서울역에서 승훈이를 떠나보낸 뒤 귀가하여 위의 글을 써 보내었습니다.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보다 더 큰사랑이 없음을, 주님께서 주신 자유와 더불어 마음속 깊이 되새기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6)
-2003년 4월 ‘쿰회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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